
책장에서 이 책을 뽑을 때 나는 두렵다. 면도날이 서 있는 것처럼 한장한장 넘길때마다 아프다. 역자 차미례는 마치 끝나지 않는 재판의 증인처럼 이 책만을 34년간 번역하고 또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이 절망적 역사를 거쳐놓고도,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죄책감이 들게 만든다.
<생존자>는 학대와 복수, 학살을 위한 집단수용소에서의 삶을 생채기 그대로 드러낸 책이다.
특히 자신의 배설물을 처리하지 못하면서 느끼는 자괴감과 수치심, 자존감의 하락. 스스로를 인간에서 가축으로 평가절하하게 되는 그 절망적 장면을 읽을 때. 그게 철저한 설계와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것을 깨달았을 때. 뜨거운 고구마가 식도에서 천천히 내려가는 것처럼 답답하고 버거웠다. 못견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피를 토하는 절규, 손가락이 부러지고 손톱이 닳아 없어지는 간절함 앞에서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고 계셨는가. 대형교회의 한가한 강대상을 수용소 한복판으로 옮긴다면, 기름진 손가락으로 성경책에 침을 뭍혀가며 지금처럼 느릿느릿 하나님은 바로 이곳에도 계신다고 설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은 이 세상에 상관하고 계신가.
자기 식기에 똥을 싸야하는 처참한 상황에서, 그리고 그걸 숨기기 위해 마셔야되는 상황에서. 기껏해야 내일 죽을 목숨을 오늘 하루 더 연장하는 것 뿐인데. 거기서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약 내가 그곳에 있다면 과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아무런 전환기도 발견되지 않는 그곳에서 용기를 북돋는 것이 가치가 있을까.
그리고 그리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도 세상은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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