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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형님 2023.03.22 08:25

주산학원엔 늘 가락이 있었다. 원장님은 “털고 놓기를~”이라느 구령으로 긴장감을 높이고, “30원이요50원이요 120원이요 320원이요~” 아웃사이더 랩하는 소리로 즉석에서 숫자를 불러댄다. 지목된 수강생이 “520원!!“이라는 답을 우렁차게 외치고 나면,  나머지 수강생들이 ”정산!!“ "오산!"이라는 외침으로 그 결과를 판가름하며 게임은 마무리 된다. 훈장선생님과 하는 천자문같은 이 노래 가락은 건물 밖으로 퍼져나갔다. 원장님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려는 듯이 늘 창문을 열어놓고 있었는데, 가난한 동네의 희망가처럼, 그 소리가 어른들의 귀에도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당시엔 진철이, 영환이 나 이렇게 셋이서 사이좋게 주산학원을 다녔다. 사실 우리가 살던 달동네에는 다닐만한 학원이 태권도, 피아노, 주산 학원 밖에 없었다. 하얀 태권도복에 품띠를 차고 동네를 뛰어다니기엔 우린 이미 너무 고학년이 되었고, 노란가방의 피아노 학원은 "여자애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한 고지식한 6학년이었다, 답이 3개인 객관식 문제였기 때문에 "형편이 어려우면 우리도 상고를 갈지 모른다" 라는 결연한 마음으로 주산학원을 끊었다. 그 당시만해도 이미 학원 밖에서 주판을 사용한 것을 거의 본적이 없다. 몇몇 쌀집의 벽엔 큼직한 주판이 걸려있긴 했지만 정확한 계산을 상징하는 장식용일 뿐이었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지로용지를 들고 은행에 가는 일이 있을 때도, 계원 누나들은 이미 닳고닳은 계산기로 두들기는 시대였지만 다른 답지가 없었다. 계산기 학원 같은 건 없었으니까.  


품세, 무기, 격투기. 소림사에 다니는 3동인 처럼 우리는 각자 잘하는 것이 달랐다. 진철이는 손이 야무져 주산을 잘했고, 영환이는 눈알을 하늘로 굴리며 암산을 잘하는 편이었다. 나도 얼추 따라가긴 했지만, 이들에 비하면 젬병이었다. 대신 수업 후반부, 문제집 풀이 시간에 두각을 나타내는 편이었는데, <주산학원>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선생님은 나를 제일 가능성 있게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기록을 보면 1989년 6월부터 중·고교 재학생의 방학기간 중 학원수강이 허용되었다고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해전인 1988년, 나 6학년때만 해도 변칙영업을 하는 학원들이 즐비했다. 주산학원은 실제로 수학과외학원으로 그 역할이 바뀌고 있었다. 우리 학원도 슬슬 간판을 바꿔달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아직 합법은 아니었다지만,  노골적으로 시내에 국영수 학원들이 떡하니 간판을 달고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동네에도 중앙시장 옆에 <성일학원>이라는 곳이 생겼다. 원래는 검정고시 학원이었는데, 본격적으로 재학생들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중학예비반, 국영수 한달 4만원. 마른침이 삼켜졌다. 아버지는 9살 때 돌아가시고, 당연히 가세는 기울었다. 엄마는 서울로 파출부를 다니며 우리 두형제를 키우셨다. 당시 아르바이트 시급이 1000원이 안되었을 때라, 4만원은 지금으로 따지면 얼추 40만원 정도의 경제적 부담이었다. 국민학생이 공부해 보겠다고 당장 40만원을 내놓으라며 손을 내밀었지만, 엄마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시며 직장으로 나가셨다.


"중학생이 되면 허리띠를 돌돌 말아서 바클의 날카로운 면으로 상대의 아구창을 갈긴다" 같은 소문이 돌았다. 낯선 공간, 버스를 타고 다닐만큼 길어진 통학거리. 폭력의 시대에 들어가는 분위기도 부담스러웠지만, 본격적인 입시에 돌입한다는 것도 내 어깨를 잔뜩 짓눌렀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진철이도 뭔가 기합이 들어간 채 <성일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부러웠지만 나는 기껏해야 책받침 뒷면에 써 있는 알파벳 소문자를 외우는 것 밖에 미래를 대비할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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