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전혀 도덕적이지 않은 상태로 인간을 대할 때, 산사태나 대화제처럼 아무런 감정없이 인간을 삼킬 때, 신의 섭리를 전혀 찾아 볼 수 없을 때, 나는 절망하곤 했다. 이 세상이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아무런 감정없이 우리를 대할 때, '자연주의' 그 냉엄함을 느끼곤 했다.
얼마 전에 산에 다녀왔다. 정상에서 줄을 설 일이 있었는데 30분쯤 지나니 견디기 힘든 한기가 찾아왔다. 눈을 흘기며 겹겹이 쌓여있는 산을 보지만, 자연은 봐줄 마음이 전혀 없다. 봐줄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마음이 없다. 자연은 그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스템을 작동하는 것. 거기에 인간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다. 자연의 시스템에서 우리는 전혀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천체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규칙성을 느낀다. 달은 완벽하게 앞면만을 보여주고, 지구는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을 지키며 1년마다 태양을 한바퀴씩 돈다. 게다가 더 뜨거워지지도 차가워지지도 않은채 평형을 유지하며 우리에게 4계절을 선물한다. 그 질서정연함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의 섭리를 직감하고, 결국 그의 창조물인 자연에 우린 자꾸 기대게 되는 것이다.
보일은 스트라브스 대성당의 시계에 자연을 비유했다. 3층 높이의 이 거대한 시계는 너무나 정교해서 만들고 난 뒤에 아무 것도 손댈 필요가 없이 작동되고 있다. 보고 있으면 감탄이 나겠지만, 사실은 나와 교감할 수 없는 톱니바퀴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꾸 이 경이로운 대상과 마음을 나누고 싶어한다.
하지만 단언한다. 자연이라는 시계는 너무나 정교하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무정한 존재라는 것을. 그것을 무시하고 자꾸만 감정을 담을 때, 우리는 해를 섬기고 달을 섬기고 소를 섬기게 되는 어리석은 이교도가 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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