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명의 국문과 친구가 나에게 코멘트를 한 책이다.
한 친구는 전화를 해서까지 읽어보라고 권했고, 다른 친구는 사서 볼 책은 아니라고 이야기 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수준이 비슷한 애들 사이에서 왜 이런 반응이 날까 의아해 했는데,
아마도 각자가 현재 처해 있는 절망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간절함의 깊이를 달리해서 보았을 때, 눈물바다 속에서 삐죽이 보이는 탈출구 같은 책일 수도,
배부른 사람의 그저 그런 감상의 쪼가리들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칠 때, 나는 지금 내 영혼이 어디를 가고 싶어하는지 주의 깊게 보겠다.
정신없이 뛰어온 내 생은 사소한 일상에도 멀미를 일으키고 있었고 진심을 말하자면 나는, 몰라, 나는 모르겠다구, 하며 쉬고 싶었다. 수첩에 씌어진 글귀대로라면 내 영혼은 어디론가 가고 싶어 했던 것이다. 어디 깊은 산 속 암자에라도 가서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툇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똑, 똑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만 사흘쯤 세다가 돌아고 싶었다. 고요하고 심심하고 그래서 거울처럼 조용해진 마음에 다시 내 마음을 한 번 비추고 싶었다."
이런 간절함들이 한 친구에게는 있었고, 나도 마찬가지 였기에 감동의 깊이는 비슷했던 것 같다. 고마울 정도로 참 좋았던 책이다.
자전 소설 <고등어>에서 보면, 해외여행을 이야기하는 남편의 머리칼을 쥐어 뜯으며 이혼할 정도로 날카롭고 철저했던 그녀가 이제 이런 말을 한다.
"그건 20대의 나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20대의 나는 아는게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대가 되자 20대에 알던 모든 것이 모르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
책을 통해 느껴지는 공지영은 세상과 많은 부분을 화해하고, 하나님과도 많은 부분을 화해하기 시작한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눈감음이 아니면 좋으리라. 귀족들의 사교모임에서나 볼 수 있는 값싼 동정과 이율배반적인 관용들이 아니기를 바란다. 분명히 보아야할 세상의 어두움들에 대해서는 눈을 뜨며, 또 여전히 참여하면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허물에 대해서는 관용을 보여주는 그런 넉넉함이었으면 좋겠다. 그냥 모든게 좋고 좋은, 모든 걸 다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한 그런 관용은 역겹다. 그건 고통 받고 있지 않은 부자들의 오후에 깃들어진 감상 나부랭이일 뿐이다.
공지영의 삶과 나의 삶, 둘 다 좀더 지켜봤을 때..책의 진가를 알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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