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밤이었을 거다. 대학 때 동아리 방에 앉아 시집을 읽으니, 덩치 큰 친구가 슬그머니 물었다. 150페이지 짜리 시집은 금방 읽어 버리니 돈이 아깝지 않아? 아니야. 좋은 시집은 좋은 음반 같은거야. 보고 또 볼 때마다 감탄이 나는 일이야. 명조체로 읽혀지는 소월과 치환과 백석과 동주의 음성이 나는 좋았다. 밤에 멀리 들리는 다듬이질 같은 그 이야기가 나는 좋았다.
조용한 밤엔 초침소리도 내 맥박처럼 가까이 들린다. 민주광장을 가로지르며 누군가 꼬부라져 소리를 지르는데도 듣기가 싫지 않다. 어느새 귀뚜라미 소리랑 어울리는 계절이 되었네. 집에 가야해서 보따리를 챙길 시간. 허리는 펴고 책 귀퉁이는 접었다. 이제 나는 쪽문으로 나가 신설동까지 걸어야한다. 570번 버스에 직각으로 앉아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