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내일 이사를 한다. 결혼하고 2년마다 꼬박꼬박 이사를 다니던 우리가 네 번째 도착지인 이 집에서는 2017년 1월부터 오늘까지 만 8년이 조금 안 되게 살았다. 지어진 이래 20년간 한 번도 수선한 적 없는 나홀로 아파트 4층의 우리 집. 나와 남편은 이 곳의 촌스러움조차 예뻐했다. 우리는 전세 재계약을 할 때마다, 집값이 떨어질 것 같은 시절마다, 집 주인에게 집을 팔 의향은 없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주인아저씨가 예스만 한다면 우리는 영혼을 끌어모을 심산이었다.
내일 이사할 곳은 지금 아파트에서 같은 길을 사선으로 마주하고 있는 아파트다. 걸어서 이십 보밖에 안 되는 거리. 사실, 우리는 이 집 바로 전에 이 골목길의 초입에 있는 빌라에서 2년을 살았다. 그리고 100m 남짓 떨어진 이 나홀로 아파트로 이사와 8년을 살고 이 길의 제일 마지막에 있는 또 다른 나홀로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거다. 치밀한 계획은 아니었으나 우리 집을 사기 위해 10년 동안 189m 거리의 골목길을 완주한 셈이다.
나는 운 좋게도 지금의 아파트에서 고독하고 자유롭게 살았다. 남편이 한참 심야 라디오 방송을 만들던 몇 년간은 퇴근 후 운동하고 밤 12시까지 영업하던 집 앞 카페에 앉아서 혼자 책을 읽었고, 아침마다 샤워 후 발가벗은 채로 동향인 이 거실 창에서 빨간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 동그랗고 빨간 해가 변변찮은 내 하루 중 제일 찬란한 것이었다. 같은 자리의 하늘에 박혀서 언제나 나를 향해 주던 동그랗고 예쁜 조명등아, 이제는 안녕! 고작 이십 보 떨어진 아파트임에도 내일부터 마주할 창가의 풍경이 완전히 바뀐다. 같은 자리, 같은 빛으로 위안이 되었던 태양을 볼 수 있는 대신 시시각각 찰랑거리며 다른 색을 보여줄 나뭇잎으로 가득 찬 새 집의 풍경도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우리가 그러리라'는 걸 믿고 이 집을 계약했다. 바퀴벌레가 들끓던 우리의 첫 신혼집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집을 귀엽다 쓰다듬으며 재미나게 살아왔으니. 다만, 이제 시어머니가 오시면 지금처럼 집 안에서 속옷만 입고 활보하지는 못할, 겪어 본 적 없는 인생의 풍경이 펼쳐질 테다. 그 풍경도 내가 기꺼이 아끼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러리라'는 걸 충분히 믿지 못하기에 열심히 품는 소망이다.
아내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