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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8 08:23

망고와 수류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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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기 전 배깔고 누워 기시 마사히코의 <망고와 수류탄> 서문을 읽었다. 아내와 나는 출근 시간이 30분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여백의 시간이 참 좋고 고즈넉하다.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서 읽는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나이쯤 되니 말해줄 사람도 없고, 듣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어진 것 같다. 


그래도 책을 읽는 것은 하루종일 도파민에 쭈뼛쭈뼛 번개처럼 서 있는 내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주는 느낌이다. 그런 정돈의 시간이 나는 필요하다. 

 

 

 

 

 


2024.11.04 13:52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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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


내일 이사를 한다. 결혼하고 2년마다 꼬박꼬박 이사를 다니던 우리가 네 번째 도착지인 이 집에서는 2017년 1월부터 오늘까지 만 8년이 조금 안 되게 살았다. 지어진 이래 20년간 한 번도 수선한 적 없는 나홀로 아파트 4층의 우리 집. 나와 남편은 이 곳의 촌스러움조차 예뻐했다. 우리는 전세 재계약을 할 때마다, 집값이 떨어질 것 같은 시절마다, 집 주인에게 집을 팔 의향은 없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주인아저씨가 예스만 한다면 우리는 영혼을 끌어모을 심산이었다.


내일 이사할 곳은 지금 아파트에서 같은 길을 사선으로 마주하고 있는 아파트다. 걸어서 이십 보밖에 안 되는 거리. 사실, 우리는 이 집 바로 전에 이 골목길의 초입에 있는 빌라에서 2년을 살았다. 그리고 100m 남짓 떨어진 이 나홀로 아파트로 이사와 8년을 살고 이 길의 제일 마지막에 있는 또 다른 나홀로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거다. 치밀한 계획은 아니었으나 우리 집을 사기 위해 10년 동안 189m 거리의 골목길을 완주한 셈이다.


나는 운 좋게도 지금의 아파트에서 고독하고 자유롭게 살았다. 남편이 한참 심야 라디오 방송을 만들던 몇 년간은 퇴근 후 운동하고 밤 12시까지 영업하던 집 앞 카페에 앉아서 혼자 책을 읽었고, 아침마다 샤워 후 발가벗은 채로 동향인 이 거실 창에서 빨간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 동그랗고 빨간 해가 변변찮은 내 하루 중 제일 찬란한 것이었다. 같은 자리의 하늘에 박혀서 언제나 나를 향해 주던 동그랗고 예쁜 조명등아, 이제는 안녕! 고작 이십 보 떨어진 아파트임에도 내일부터 마주할 창가의 풍경이 완전히 바뀐다. 같은 자리, 같은 빛으로 위안이 되었던 태양을 볼 수 있는 대신 시시각각 찰랑거리며 다른 색을 보여줄 나뭇잎으로 가득 찬 새 집의 풍경도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우리가 그러리라'는 걸 믿고 이 집을 계약했다. 바퀴벌레가 들끓던 우리의 첫 신혼집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집을 귀엽다 쓰다듬으며 재미나게 살아왔으니. 다만, 이제 시어머니가 오시면 지금처럼 집 안에서 속옷만 입고 활보하지는 못할, 겪어 본 적 없는 인생의 풍경이 펼쳐질 테다. 그 풍경도 내가 기꺼이 아끼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러리라'는 걸 충분히 믿지 못하기에 열심히 품는 소망이다.


                                         아내의 글








2024.10.30 02:58

술래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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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는 전봇대에 고개 숙이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내 나이 마흔 여덟까지 숫자를 세고 나니 세상이 조용해져 실눈을 떠버렸다. 오래 참은만큼 꿈은 더 깊이 숨어버렸구나. 아빠도 형도 이 좁은 골목에서 술래를 못 찾고 길을 잃었다.

 

양자역학인가. 꿈은 내가 쳐다보면 늘 거기에 없었다. 나 여기 있는데. 왜? 내가 포기하는 순간, 바라던 인생은 깽깽이 발로 디스코치고 나올테지. 노을에 시뻘겋게 달궈진 우리집 이층 창문이 열린다. 이제는 나도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 듣고 싶다. 

 

 

 

 

 

 

 

 

 

 


2024.10.28 15:32

나의 성공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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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기는 걸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초면에 빵빵 터트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짧게는 한달, 길게는 3년씩 걸려가며 상대와 충분히 친해졌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웃음엔진에 시동을 건다.

 

대학교 입학 후 2학기에 들어간 기독교 동아리에서도 한학기 정도는 그저 잠복했다. 나는 그저 말없이 웃기만 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겨울방학 때 선배들이 소그룹을 나누며 "천이는 수줍음이 많으니까, 활발한 태웅이랑 같은 조를 하면 좋겠다"며 인사발령(?)을 냈다.  

 

이제쯤 본색을 드러낼 때가 됐군. 생각할 쯤 겨울 수련회가 시작됐다. 밤새 철야 기도회로 눈물 콧물 빼면서 다들 기진맥진해 들어온 숙소. 내일 일정이 있어 일찍 자야한다고 선배가 불을 껐는데, 성령의 불을 받아 각성한 대학생들이 쉽게 잠들 수가 있나. 

 

나는 허공을 향해서 유머시리즈를 콩알탄처럼 툭툭 던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이라 집중력이 있었고, 모두의 귀도 열려있었다. 푸ㅋ 풋ㅋ 푸드듴. 잘 달궈진 후라이팬에 올려놓은 후랑크 소세지처럼. 시간차를 두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중에는 완전히 나의 무대가 되어 오르락 내리락, 그날의 웃음을 파도처럼 지휘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나의 데뷔무대였다.   

 

 

 

 

 

 

 

 

 

 


2024.10.26 00:15

목신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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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부터 피곤에 골아떨어져, 자고 일어나니 어리둥절한 밤 12시다. 슬리퍼 끌고 나가서 어디 카페라도 앉아 있고 싶어지는 마음.

 

요즘은 손님이 오래 앉아있지 말라며 일부러 불편한 의자로 인테리어를 한다지만, 대학시절에는 두툼한 소파가 있는 카페가 많았다. 뒤로 눕듯이 앉듯이 팔짱을 끼고 기대서는 천장의 무늬 같은 걸 바라봤는데.

 

공강시간에는 이런 곳에서 성냥갑을 가지고 놀듯, 생각을 쌓아올렸다 무너뜨렸다 하며 친구를 기다리곤 했다. 그때 마시던 구수한 향의 블루마운틴이나 헤이즐럿 같은 커피는 어쩌다 사라졌는지 모르겠네 .

 

그 중에 <목신의 오후>라는 카페가 있었다. 학교 주변의 커피값이 보통 2000원정도 할때였는데,  이곳은 3500원을 받는 고급 수제(?)커피집이었다. 카페 가운데는 당구대가 있었고 주로 연예인이 커피를 마신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총학생회가 가격에 발끈해 “캠퍼스 질서를 어지럽힌다”며 이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마치 김두환과 시라소니처럼. 참살이길 한복판에서 학생회장과 사장이 담판을 짓고는 가격이 약간 조정됐다.

 

목신의 오후. 영어로 된 프랜차이즈가 즐비한 요즘 커피전문점을 생각하면 꽤 낭만있는 이름이었는데. 그 대단한 가격 때문에. 용기내서 한번 들어가보지도 못한 그 커피숍이 이 밤에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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