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차
나는 이 길을 걷는게 너무 괴롭고 외롭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것 같은 외로움. 대체 왜 나는 여기에 다시 왔을까 한심하기만 했다. 아는 누나가 '나이가 드니까 이래저래 선택권이 많아져서 괴로운 것'이라고 꼬집어줬는데, 내 우스룬 꼴을 제대로 설명한 한마디였다. 실제로 젊고 어린 친구들은 선택지가 적었고, 덕분에(?) 이곳의 단순한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같았다.
같이 길을 걷는 호현이는 시간이 갈수록 남은 거리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처음 피레네 산맥으로 돌아가 800km를 다시 걸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 가난한 마음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