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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5 00:52

2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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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차

나는 이 길을 걷는게 너무 괴롭고 외롭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것 같은 외로움. 대체 왜 나는 여기에 다시 왔을까 한심하기만 했다. 아는 누나가 '나이가 드니까 이래저래 선택권이 많아져서 괴로운 것'이라고 꼬집어줬는데, 내 우스룬 꼴을 제대로 설명한 한마디였다. 실제로 젊고 어린 친구들은 선택지가 적었고, 덕분에(?) 이곳의 단순한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같았다.

 

같이 길을 걷는 호현이는 시간이 갈수록 남은 거리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처음 피레네 산맥으로 돌아가 800km를 다시 걸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 가난한 마음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2024.06.12 02:03

1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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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차.

오늘도 어쩌다보니 37Km를 달려왔다. 이 동네 일베르게에 김치와 라면 그리고 밥을 준다는 이야기에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달려왔다. 다 버리고 내려놓고 생각하겠다는 사람이 뭐 그리 먹고 싶은게 많는지. 한국 음식이라면 게걸스럽게 덤비는 내가 부끄럽다.

 

오늘은 음악도 유튜브도 듣지않고 그냥 그대로 이곳을 느끼자는 마음으로 걸었는데 한국에서 연락이 많이왔다. 구구절절 다들 바쁘게 사는 서울. 사연도 복잡하고 풀기도 어려운 이아기들이었다. 다시 돌아가면 어떤 일들을 쳐내고 어떤 일에 집중해야 할까. 이 미로 속에 매몰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됐다.

 

 

그러면서도 벌써, 읽고 싶은 책 4권을 집으로 배송시켜놨다. 이곳에서 제일 그리워지는 한국의 일상은 첫째로 한식. 둘째로 헬스. 셋째로는 배깔고 누워서 책을 읽는 것. 

 

이곳에서 무얼할지 모르겠는 진공의 시간을 보낼 때, 특히 책 생각이 많이 난다. 한국에서는 책을 고를 때도 바빴다. 금방 적용할 수 있는 분야만을 선택했는데, 이제는 그냥 그대로의 책.  문학작품도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든다.  

 

가난한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판단하지 않고 넓게 받아들여줄 수 있는 가난한 마음. 단서가 될만한 생각이 아지랑이처럼 떠올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2024.06.10 23:19

1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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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차. 이제 300km도 남지 않았다.

이제는 다리가 자동으로 움직이는 걷는 기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나약한 인간. 30km를 걸으니 오늘도 힘들었다. 

오늘 같이 버거운 날에는 즐거운 주제로 대화를 나눌수 있는 벗이 하나 있다면 좋았을텐데. 나는 그운을 초반에 다 써버린 것같다. 이상하게 어제도 오늘도 숙소에 한국인 한명이 없다.


도착해서 씻고 빨래하고 널고 치료하고 일기를 좀 쓰고나면 오후 4시가 훌쩍 넘는다. 주변의 성당을 찾아 기도를 하고, 저녁을 해먹을지 사먹을지 골라서 준비를 한다. 이 정도 일과를 끝내고 나면 오후7시. 자유 시간이 많아봐야 딱히 할일도 없지만 고되기가 옛날 부대 생활 못지않다. 저녁에는 낯선이들과 모여있는 방에서 자야하니 점호 받는 기분도 들고. 어쨌든 매일 매일 훈련 뛰는 기분이다.


나는 아직끼지 빈털탈이 같지만 이제 이 순례길을 슬슬 마무리 할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즐거운 여정이든 고된 여정이든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교훈을 얻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


2024.06.09 03:43

1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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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차

이 길에 대체 무슨 답이 있을까. 나는 답을 써보려 시험장에 나왔지만. 출제자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넓은 이곳의 평야가 빈 교실 처럼 느껴진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 인간에게 관심이 있습니까.’ 이것이 내가 몇년 동안 품에 안고 있던 질문이다. 들판을 걸으며 자꾸만 물었다  그 분은 무관심으로 지금 대답하고 계시는 걸까. 이것이 그분이 내게 답을 말하는 방식일까.


탁트인 평원을 걷고 또 걷다보면 내가 다 닳아 없어지는 것 같은데도. 오만 가지 불만과 욕정. 나쁘고 추한생각들이 돌처럼 탁탁 튀어 오른다. 등산화 속에 파고 들어와 나를 괴롭한다.





2024.06.07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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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인기맨이었다. 얼굴은 좀 못생겨도 늘 웃음이 넘치고 즐거우니까 대학 시절 내내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고, 직장에 들어와서도 인기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는게 힘든 일인 적이 없었고. 알고나면 나를 좋아해 줄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좀 흔들린다. 나를 싫어할수도 나를 꺼려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찾아온다. 대학때부터 오래 알던 친구들도, 직장에 들어온 젊은 친구들도, 이런 낯선 곳에서 새로 만나는 사람도. 나를 매력없게 생각할 수 있을거다. 나를 피곤해 할 수 있을 거다. 한번 이런 의심이 드니까 모든게 조심스러워 진다.

 

나는 이제 비호감인가. 어떤 부분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거겠지만.  어떤 부분은 노력과 상관 없이 발생하는 것 같다. 나이 듦이란 이런걸까. 매력의 빛이 누렇게 바래기 시작한다. 어쩔수 없는 때가 오는 것만 같아서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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