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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8 07:17

색의 3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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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일찍 잡는 걸 싫어한다. 한달 전 정도 넉넉하게 잡은 약속에는 이상하게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중첩되는 징크스가 있다. 이번주가 그렇다. 새벽부터 부산하게 떠드는 을지 훈련부터 구매하기까지 12단계는 넘게 걸리던 테슬라 입고, 오디션 준비만 한달넘게 걸렸던 오케스트라 입단, 그리고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던 강원도 고성의 2박3일까지. 한주가 가득차있다  

 

하나씩 나눠보면 별거 아니고 모두 알록달록한 일들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중첩되니 이색 저색 다 섞여 들어간 물감 헹구는 통 같다. 내 마응이 지금 탁하고 검은 쑥색이다. 

 

특히 오케스트라에 대해서는 미칠듯한 걱정이 온다. 이곳에 들어가고 나면, 밀물과 썰물처럼 선율이 느껴지는 나날들이 될 줄 알았는데, 한달 뒤공연이라니. 그것도 무려 10곡. 이제 겨우 16마디 연주하는 실력인 내게는 벽이요 태풍이요 해일처럼 느껴진다. 

 

어떻게든 한달을 버티면 비온 뒤 대나무처럼 쑤욱 커져있으면 좋으련만, 그걸 견디는게 보통일은 아닐 거라는 걸 안다. 회피하지 말고 부디 해피하게 지내기 만을 바랄 뿐이다. 

 

 

 

 

 

 

 

 

 

 

 


2026.06.17 07:43

열역학 제 2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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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가 사실상 부도가 났다. 경쟁사가 무너졌으니 꼬숩다 할 게 아니다. 이제는 방송 산업이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말이다. 조중동의 일부. 종편에 있다가 손석희의 뉴스룸으로 급부상. 최순실 사태와 정권 교체. 영화 같은 드라마들. 왜 저 회사로 안갔을까. 한동안은 JTBC에서 했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했던 걸 후회하기도 했는데. 세옹지마. 세상이 또 이렇게 흘러가 버린다. 

 

그리고 또 한군데의 회사. 전직장 하이닉스의 이야기를 최근 많이 듣는다. 나는 3년째 (멍청한) 팀장 역할을 하고 있으니, 딱히 하이닉스 홍보팀 시절 사무 업무와 하는 일이 다르지도 않다. 방송국의 PD라는 타이틀은 어느 자리에서건 늘 자부심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연봉 10억이상의 차이를 뛰어 넘을 만큼 대단한 위치인가를 생각해 보기도 하는 중이다.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이 후회하지 않는 일만을 고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나는 늘 그 자리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했지만, 실수도 하고 오판도 하면서 길을 만들어왔다. 대충 한 70점짜리 인생인 것 같다.

 

과연 100점짜리 무오류의 인생이면 즐거웠을까. IMF. 집값 폭등. 종편의 성장. 비트코인. 반도체 초호황. 과거로 돌아가서 이 모든 일의 결과를 알고 척척척 내 포지션을 옮겼다면 마냥 신이났을까. 아니다. 공략집을 보고나서 하는 롤플레잉 게임처럼 시시했으리라. 나는 자유도가 있는 내 삶이 더 괜찮은 것 같다. 

 

이럴 때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한다. 그건 분명 비도 맞고 고생도 하고 더위에 헉헉대던 고생스러운 여행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매일매일 800KM를 택시타고 안락하게 여행했다면 그게 더 훌륭한 시간이 되주었을까. 당장 물집에 절뚝거리고 있는 순례자들의 부럼움을 샀을지는 모르지만, 최고의 여정은 아니다. 고통도 시행착오도 어이없는 실수도 인생을 그리는 다양한 색의 물감이다.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사두었던 스페이스 X 주식이 1000배 이상 뛸지도. 아니면 주식이 다 내려앉고 공황이 올지. 트럼프와 김정은이 서로 미사일을 쏘아댈지도. 확실한 것은 오직 하나. 우리 모두의 마지막은 겸손한 한줌의 흙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만큼 공평한 결말은 없다. 그게 자연의 대섭리. 열역할 제2법칙 엔트로피다. 

 

 

 

 

 

 

 

 

 

 

 

 


2026.05.11 03:48

테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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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계약을 했다. 최근에 주식을 해서 번돈의 1/10을 털었다. 매일 오르락 내리락하는 차트의 수익율. 실감이 안났다. 나는 저 엑셀상의 수치가 손에 잡히는 결과물로 변하는 걸 보고 싶었다. 클릭 클릭 클릭. 빨갛게 변한 디지털 신호를 바꾸니까 실제로 타고 다닐수 있는 자동차가 생겼어요!

 

5년전 아내 친구가 시승시켜준 테슬라를 한번 타보고는 깜짝 놀라서, 늘상 테슬라 타령을 하던 나였다. 테슬라 너무 좋아 열두마당을 완창할 수 있는 판소리꾼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사고 나서는 마음이 무겁다. 아내와 함께 테슬라 매장을 나왔을 때도 우린 풀이 죽고 걸음이 무거웠다. 500만원 계약금을 걸고 나서의 다음 단계. 구매를 위한 개인정보 입력도 하지않고 있다. 이게 맞는 건가. 주식이라는 불로소득을 사용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나는 폭죽을 터트리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큰 돈을 쓰는 일은 확실히 스트레스를 주는 걸까.  

 

20년 넘게 집이 가지고 싶어,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 재작년에 구매했고 빚도 거의 갚아가는 상태다. 그리고 이건 내가 꼭 사고 싶었던 차였다. 운좋게 일확천금을 이용할 수 있었다. 물질적으로는 둘다 꿈을 이뤘다. 숙제 끝. 더 이루고 싶은게 없는 본격적인 여생의 시작이다. 이제는 소소하게 여행다니고 운동하고 봉사하면서 살면된다. 

 

당연히 즐거워야 하는데 이 기분은 뭘까. 앞으로 더 가지고 싶은게 없는게 허무하고, 죽을 날만 바라는 인생같다. 게임 끝판왕을 깼을 때, 이제 뭐하지 하며 집의 빈공간을 계속 쳐다볼 때의 기분이다. 

 

 

 

 

 

 

 

 

 

 

 

 

 

 

 

 

 


2026.05.11 03:28

밤의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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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은 이틀에 한번 꼴로 잠을 못 주무신다고 했다. 자다가 새벽에 화장실 다녀오는 걸 거의 열번씩 하신다. 그렇게 밤에 깨면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시겠는가. 저녁에 비빔면 먹고 골아 떨여진 나도 이렇게 일기 쓰면서 외로워하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요즘 너무 외로워. 라고 말씀하시는 장모님을 위로한답시고, 그럼요. 저도 그러면 외로워요. 몇마디 거들었던 거 같은데. 장모님이 아내한테 낮에 전화를 했다. 유서방이 외로워하는거 같으니까 잘해주라고. 그건 아마도 내가 걱정되서라기 보다 딸이 걱정되서였을거다.

 

장모님은 요즘 정신과 약을 드시고 계신다. 생각이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서도 딸을 챙기려는 그 마음이 애틋하고 짠할 뿐이다. 

 

 

 

 

 

 

 

 

 

 

 

 

 

 


2026.05.09 08:39

일희일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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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시장이 미쳐 날뛴다. 미친년 속옷처럼 펄펄 날아 다닌다. 나도 2년전부터 다시 주식을 하기 시작했다. 어짜피 퇴직연금이라 은퇴할 때까지는 찾을 수도 없는 돈. 그래서 고스톱에 사용하는 사이버머니 같다는 생각에 투자를 했다, 10만원 20만원 쏠쏠하게 버는 재미가 있고,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 구경하는 맛도 있었다.

 

AI로 인한 역사적인 반도체의 호황. 퇴직금 2억2천의 시드머니는 이것저것 살을 붙여가더니 어느덧 4억원을 넘어섰다. 매달 8만원씩 회사에서 부어주던 연금저축은 2년전까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지금 1억원이 되기 직전이다.

 

평화롭던 고스톱판은 날 순순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전체 금액이 커지니 방배정을 다시 해줘 버렸다. 쩜당 1만원에서 100만원짜리로 옮긴 기분이다. 70, 110, 930, 2880, 1310.  이 숫자들이 이번주 내 휴대폰에 찍힌 일일 수익금이다. (*단위 만원) 주식이 하루 1%만 상승해도 현금 400만원이 생기니 후덜덜할 수밖에.

 

나는 상상해본다. 이번주는 이상하리만큼 상승장만 있어 다행이지만, 반대의 경우는 얼마나 맴이 찢어질까. 또 나를 얼마나 자책할까. 2%만 내리면 거의 1천만원의 돈이 삭제된다. 한달 동안 일한 대가가 파랗게 녹아 내리는 거다. 

 

만약 누군가 내게서 이 정도의 돈을 사기쳤다고 하면 어땠을까.  식금을 전폐하고 쓰러져 누워있거나, 칼을 들고 지구 끝까지 쫓아가 죽여버렸을텐데. 주식 시장에서는 핑핑 돌아가는 숫자를 들이대며 내 통장에서 이 만큼의 돈을 줬다 뺐었다 한다. 

 

3개의 앱을 돌아다니면서, 하루에 열번씩은 주식잔고를 확인하고 계속 올라가는 내 총 자산을 들여다 본다. 이 흥분감을 나누고 싶어 미치겠다. 하지만 돈 많이 벌었다고 말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불로소득에 질투를 하거나, 나눠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사람만 주변에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입이 근질근질 하다. 나는 아마 로또에 당첨되어도 결국 다 털어놓을 한심한 인간이라는 자각을 했다. 

 

아내는 "요즘 완전 눈시깔이 돌았다"고 한다.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다. 아마 진짜 부자들은 이런 초심자의 행운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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