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는 길에 세명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모두 받지 않았다. 돌아오는 전화도 없었다. 그리움은 이렇게 지우개처럼 닳아 없어지는 것.
나는 캠핑장의 화로에서 옛일을 뒤적이는 사람 같다. 가르마 사이에 수북한 새치같은 잿더미. 사이사이로 벌겋고 뜨거운 것들이 아직 보이지만. 그렇다고 다시 불길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점심 시간에는 빈의자가 되어 앉아있었다. 회전문을 돌아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겨울이 되니까 마음이 만신전처럼 펄럭인다.
퇴근하는 길에 세명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모두 받지 않았다. 돌아오는 전화도 없었다. 그리움은 이렇게 지우개처럼 닳아 없어지는 것.
나는 캠핑장의 화로에서 옛일을 뒤적이는 사람 같다. 가르마 사이에 수북한 새치같은 잿더미. 사이사이로 벌겋고 뜨거운 것들이 아직 보이지만. 그렇다고 다시 불길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점심 시간에는 빈의자가 되어 앉아있었다. 회전문을 돌아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겨울이 되니까 마음이 만신전처럼 펄럭인다.
회사에 증정본으로 들어온 문학과 지성사 시집을 한권 챙겨다가 집에서 누워 읽었다. 나는 세편 정도를 읽다가 포기했다. 또 미래파인가. 이런 현대시를 읽을 때마다 기분이 잡친다.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애써본 내 집중력이 아깝기만 하다.
시는 징검다리 같아서 오해와 이해가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 자기만 아는 생각의 돌덩이를 저 멀리 던져놓고 알아서 넘어오라고 하며 낄낄대는 시인은 따귀라도 때리고 싶다. "그런 생각의 파편들은 니 일기장에나 쓸 것이지, 돈을 받고 팔 것은 아니다" 라고 쏘아 붙이고 싶다.
봄에는 퇴근하고 시 창작 수업을 들었다. 수업시간마다 거슬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합평할 때 모든 사람의 글에 평가를 했다. 선생님보다도 더 많은 말을 하며 불쾌한 시간을 만드는데도, 선생님은 자제 시키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글에 심취해 "먼저 영어로 생각하고 그걸 한국어로 번역해 보려고 한다"는 괴상한 시작법을 이야기 했다. 잭슨 폴록인가. 문장은 사방에 흐트러져 있었고, 내가 보기엔 도통 알수 없는 글들의 나열이었다.
합평시간에 용기를 내 "이 문장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는데, 본인도 설명을 하지 못했지만 그건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그래도 그 사람의 글이 너무 좋다고 했다. 그 사람도 꼴보기 싫었지만 그걸 좋다고 하는 선생님은 더 꼴뵈기 싫었다.
시만으로는 먹고 살수가 없어서 알바를 하느라, 그리고 그 돈으로 동해에 놀러가느라 우리 숙제 검사를 못했다던 선생님.
요즘 사람들이 시를 안 읽는다고? 이렇게 무책임한 수업. 이렇게 무책임한 글은 너네 부모님도 이해를 못하실거에요. 이것이 우리가 해석해야 하는 현대시라면 그래, 니들끼리 노시죠. 쏘아붙이지 못한게 아쉬울 뿐이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취미란에 독서와 음악감상이라고 적는 사람만큼 따분해 보이는 게 없었는데, 요즘 누가 그런 취미를 말한다면 정말 클래식하고 기품 있어 보이는 것 같다.
이서진이 보기 좋다. 하하같이 유치한 어른이거나, 박나래 같이 뻔한 맞장구만 치는 TV판에서. 그는 빈말을 별로 안하는 스타일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냐는듯. 성인 어른들이 할법한 시니컬한 코멘트를 툭 던지는 맛이 좋다.
국물이 튄 앞사람에게 말없이 물수건을 건내는 손길 같은. 별거 아닌 표정으로 자기 사람을 챙기는 모습도 현대적이다. 살갑게 굴다가 어려운 순간에는 싸해지는 요즘 시대라 더 매력적인지도 모르겠다.
친한척 하지는 않지만, 같이 일하기 나쁘지 않은 우리 부서의 과장님 같다. 엘레베이터에서 만나면 인사하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과잉 과잉 과잉. 요즘의 일상은 늘 과잉이다. 너무 많이 사고 너무 자주산다. 섬광처럼 반짝이는 자극들이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과식을 하고나면 배고프게 놔두는 것이 아니라, 살빠지는 야채, 살빠지는 과일, 살빠지는 물을 들이붓는다.
몸이 흙탕물처럼 독하게 오염되어 있다면, 맑게 보이기 위해서 파란물, 하얀물을 끊임 없이 들이붓는 것이 요즘의 솔루션이다. 그냥 놔두자. 우리 몸과 마음은 가라앉고 투명해질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