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검색


2025.02.02 08:06

청심환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대학교 때 열열히 좋아하던 여학우가 있었다. 사실 상대도 나에게 호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밤낮으로 그 친구 생각을 너무너무 많이 하다가 생각이 응축되어, 만나면 늘 청심환 같은 단어들을 던졌다. 결국 부담스러워 떠났던게 생각난다. 

 

요즘 문화센터를 다니며 일주일마다 시 한편씩 쓰는 숙제를 한다. 시는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게 맞는데, 보여주기 위해서 쓰면 촌스럽게 엇나가는 경우가 많다. 극장 위에 책상 하나 놓고 관객들 앞에 앉아 있는 것 같다.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지우고 덧붙이고 지우고 덧붙이다 보면, 말도 아니고 글도 아닌 이상한 청심환이 내 책상 위를 굴러다닌다. 

 

 

 

 

 

 

 

 

 

 

 

 


2025.01.30 02:37

스트레칭 매트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무슨 운동을 하고 돌아갔길래

매트 위에 체모가 띄엄띄엄 

 

꼬부라진 털 구부러진 몸을 다리기 위해

비둘기, 전갈, 엎드린 강아지까지

온갖 동물이 마술사처럼 불려진다. 

 

 

 

 

 

 

 

 

 

 

 


2025.01.23 01:33

이대 목동 병원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대 목동 병원

 

50대가 되면 누구나 러시안룰렛을 한다

 

서른 살 무렵

건강검진을 시작할 때는

다들 자신 있게 방아쇠를 당기고 

오후 휴가를 즐기러 갔다

 

스무 바퀴쯤 탄창이 회전하면서

나도 몇 군데 부서를

부서져 가며 돌고

영상의학과 간호사의 리볼버에

사람으로서 총알이 되어 들어간다

 

어느새 줄어든 약실 구멍 

이제 누구 하나쯤

먼저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햇볕 아래

 

신발 참 편하게 생겼네. 어데서 샀어요

신장을 하나 잃은 아주머니가 묻는데도

밤부터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입이

빠스처럼 엉겨 붙어 말은 못하고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을 신은채

먼저 탐험을 떠났다

 

조금 답답해.요

애써 가락을 올리는 간호사의 주문에

MRI 통이 굴림판처럼 돌아가고

꽝이냐 암이냐

실내 취침이냐 야외 취침이냐

찬 흙을 반쯤 덮고 기다리는 사이

 

대기실의 사람들이 

도시락처럼 겹쳐있고

 

배달 온 쿠팡 직원은

도미 모양의 스티로폼 접시 위로

천사채를 곱게 깔고

환자 한 명 데리고 나간다

 
 

2025.01.15 19:46

체포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무법자는 체포되었다. 하얀 커튼을 배경으로 한 흔들린 화면. 붉은 얼굴의 사나이는 '신을 가둘 수 있는 법이 어디있는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검은차에 가려져 머리카락 하나 노출되는 일 없이 꽁꽁 숨겨 다른 보호막으로 들어갔다. 

 

이상하다. 그것은 분명 통쾌한 승리의 감정은 아니었다. 이렇게 허무하고 쉽게 될 일인가. 축배를 들자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줄다리기의 반대편이 갑자기 갑자기 줄을 놓은 것 같다. 모두가 굴러 떨어져서 머쓱하게 주위를 살피는 중이다. 

 

긴장되는 영화의 장면처럼 세상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당장 내일부터 우리는. 누구를 미워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2025.01.11 07:54

가라데 도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가라데 도장

 

 

사포로 얼굴을 문지르는 날씨였다.

겨울보다 꽁꽁

숨어든 대통령이

작년 나이를 한 살 깎아줘

오십이 되기 전에 나는 흰띠를 받았다.

 

도복은 광목 같았다.

이제 다듬이질을 시작하셔야죠.

정강이가 먼저 알아채고 풀을 먹인 듯 뻣뻣해진다.

 

내게는 무량수전 대들보

같은 샌드백이

검은띠의 돌려차기에는 구부려 인사하는구나.

 

여보. 세 달을 묶어 신청하니 도복을 공짜로 줬어.

이번에는 다른 기합을 보여주고 싶어

바람을 가르는 주먹을 내질러 보지만

공기는 그 자리를 금세 메꿔 버린다.

 

하다마는 것이 하나마나 한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이게 낫지 않냐며

발을 올려 들어 부등호를 만들어도 보고

 

그래. 니 말이 맞긴 맞지  

누구도 맞지 않을 것 같은 발재간을

거실에서

 

살다마는 인생이 안간힘을 써보는 밤이었다.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 456 Next
/ 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