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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0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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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 사용할 가짜 문자를 만들기 위해, 요즘 제일 많이 뒤적거리는 건 이 홈페이지이다, 2000년부터 이곳에 썼다 방치했다를 반복했으니 그래도 23년의 기록이 뜨문뜨문 적혀있는 셈. 하지만 예전 글들을 보면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때는 사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승전결도 없이 감정의 파편들을 사방에흩뿌리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추리해 봐라, 내 복잡한 마음을. 아주 건방진 놈이었다  

 

성장하고, 복사하고, 분열하고, 사멸하고. 우리 몸의 세포는 1년 정도면 거의 교체되기 때문에 1년전의 나는 이 몸안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하물며 23년 전의 나라니. 완전 남인 셈이다. 


남이 쓴 그 글을 지금 읽어보면 온통 개꿈 같은 이야기이고, 뭐라 해몽을 붙여야할지도 모르겠다. 읽는 사람이 과자 부스러기 같이 엉망으로 흩어진 말을 추리해야하는데 이제 누가 내게 그런 관심을 갖겠는가. 쓰레받기와 빗자루로 쓱쓱  쓸어담아 쓰레기통에 처박혀야 될 수준이다. 

 

요즘은 아침방송 때문인지 11시쯤 잠들어서 5시쯤 깬다. 이 새벽 시간엔 집중력도 좋고 방해하는 사람도 없어서 뭘 좀 읽고, 쓰려고 하는 편이다.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일기처럼 평이하고 알아먹게 쓰는게 좋다. 좀 웃긴 소리지만, 50이 다 되어서야 삶을 어떻게 '받아쓰기' 해야하는지 깨달은 것 같다. 

 

 

 

 

 

 


2023.06.18 05:01

소백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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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갔던 소백산 산행. 안내 산악회 버스에선 원래 대화 금지인데, 뒷자리에서 계속 말을 이어가던 아저씨부터가 문제였다. 중반에 산악대장이 와서 주의를 줬지만 그 때뿐. 말을 안하면 큰일 나는 병에 걸린건지 계속 대화를 쫑알쫑알 하는데 스트레스가 쌓였다.  "치이익~" 앞문이 열리는 증기 소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다듬고 출발하려는 순간. 아뿔싸. 휴대폰을 차에 놓고 온 걸 깨달았다. 물어물어 인솔자의 위치를 찾았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버스는 이미 우체국 주차장까지 내려갔고, 유일한 대중교통인 시골버스는 2시간에 한번씩 온다고 하니, 별 도리가 없었다. 그저 전화기를 빌려 집에다 "차가 돌아오는 4시 30분까지는 통화가 안되어도 걱정하지 마라"는 메시지만을 남기고, 쿨한척 산행을 이어갔다. 

 

전화기는 사진기이자, 통신수단이자, 지도이자, 정보이자, 외로움을 벗어나게 해주는 친구였다. 오가는 산행객들이 있었지만 갑자기 혼자 원시의 세계로 툭! 떨어졌다.


딱히 챙길 사람도 없는 나홀로 산행에서는 아무래도 피치를 올리게 된다. 그래도 이렇게 사람이 없을리가 없는데… 앞에 있는 등산객을 40분 정도 지나서 만났다. "비로봉이요? 이쪽으로 가는 게 아닌데...국망봉으로 가는 코스에요" !!! 버스에서 인솔대장이 "걸음이 빠르지 않은 사람은 국망봉으로 가지말라. 버스를 놓칠수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냥 밀고 갈까. 하지만 내 실력으로 제시간에 도착할 지 알수도 없었고, GPS가 장착된 휴대폰이 없으니 페이스를 조절할 방법도 없었다. 

 

서둘러 원점 회귀를 해야한다. 온 몸을 휘감는 낭패감. 남들보다 1시간 이상 뒤쳐지는데 이걸 따라 잡을 수 있을까. 나는 바람처럼(?) 달렸다. 바위가 울퉁불퉁한 내리막 길을 뛰니 체중이 실리는 엄지발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신발엔 작은 돌도 몇개 들어가 고문기술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걸 챙길 시간이 없었다. 늦지 않아야한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으려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물었다. "비로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여기서 몇분 거리일까요?"   

 

간신히 원점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올라갈 때도 쉬지 않았다. 버스를 같이 타고 온 산악회 사람을 보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지 않는 걸로 원칙을 정했다. 하지만 산길을 이미 1시간 정도 달린 후였고, 더군다나 혼자 긴장하며 달렸기 때문에 호흡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벌써부터 다리가 흔들리는 걸보니 체력은 이미 털렸구만. 휴대폰이 없었기에 이 상황을 나눌 수도 없었다. 작은 기계의 분실일 뿐이었는데, 완전한 문명과 단절. 고립감. 이번 산행은 정말 강렬했다. 

 

 

 

 

 

 

 

 

 


2023.06.10 04:21

야채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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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언어사용에 조심스러워 진다.  얼마전에도 우리 진행자가 청취자 문자에 써있는 "요이!땅 하고 이제 출발하려고 합니다"라는 문장을 그대로 읽었다가 이틀간이나 사과하라는 항의를 받았다. 영어에는 너그럽지만 일본어에는 발작증상을 일으키는 것이 이해가 안되기도 하고, (나는 생동감을 전하기 위해 그 정도 이야기는 그대로 전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이런 형편이니 당연히 스탭들도 단어 사용에 조심스러워진다. 그런데 예전부터 이상하게 느껴졌던 건 야채라는 단어가 금기시 된다는 것.  이 단어는 언제나 작가분들이 채소로 바꿔서 사용한다. 어디서 내려온 지침인지는 모르겠으나 청취자에게건 선배에게건 몇번 꾸지람을 당해 이렇게 훈련된 것이겠지.  

 

하지만 국립국어원은 "야채라는 말은 일본 말이므로 채소라고 말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라는 주장에 대해- 일본에서 유입된 단어라고 볼만한 근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라는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사실  야채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와 상관없이, 세종실록이나 성종실록에도 쓰였고 고려시대에 지어진 동국이상국집에도 사용되었다. 당연히 국립국어원은 현재 야채와 채소 두가지 모두를 표준어로 등재해 놓았다.

 

갑자기 야채타임. 야채크래커가 그립다. (대체 타임과 크래커는 괜찮고 야채는 안되는 이유는 뭐야) 야채라는 말을 편히 쓰고 싶다. 오뎅이라는 말도 편히 쓰고 싶다. 도무지 어묵으로는 길거리에 서서 먹는 그 싸구려 음식의 향취가 표현이 안되는 것 같다. 

 

P.S 소보루 빵. 소보루는 일본말이라서 안되고, 그렇다고 곰보빵은 장애인 비하여서 안되고. 대한민국에서는 그 빵을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없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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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9 05:42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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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들어와서는 프로그램 이야기를 잘 안하는 것 같다. 맨바닥에 좋은 음악을 이어 가는 아침 프로그램. 라디오의 본령이라고 할수 있지만 그동안 대본으로 꽉꽉 채운 프로그램만 하다가, 이 단순한 컨셉을 마주하니 혼자 만주벌판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 미묘한 차이를 감별하느라 휘청휘청 댔다. 

 

당연히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을 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은 바람, 햇살, 순수, 첫눈과 같이 지나치게 서정적인 단어를 선호하진 않는다. 그 자체가 너무 많은 이미지를 담고 있어 재료로는 오히려 불편하니까.  고추장, 접시, 바구니 같이 담백한 단어를 사용해, 평범하지 않은 생각을 뽑아내는 방식을 즐기는 것 같다  

 

청취자들은 쉬운 음악을 원하면서도 세련되고 싶어한다. 나도 평범하고 누구나 다 아는 음악을 재료삼아, 종갓집 댓돌의 신발처럼 가지런하고 보기 좋게 배치하고 싶다. 정확히는 좋은 음악을 찾는 게 아니라 좋은 흐름을 찾아내는 것. 그게 요즘 내가 하고 싶은 연출이다.

 

 

 

 

 

 

 

 

 

 

 

 

 

 

 


2023.06.05 13:21

여름에 부르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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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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