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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6 04:43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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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냐. 우리는 완벽한 꼰대가 되어버렸다. 삼열, 종희, 정식, 나. 네 명의 남자는 돼지고기를 먹으면서 영화와 정치, 건강과 운동. 이런저런 주제를 나누었지만, 두꺼운 코팅의 방수포처럼 상대의 말은 하나도 흡수되지 않았다. 

 

한 때 우리는 가난하고 똑똑한 대학생이었다. 진보적인 대학생활을 함께했고 그 길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서로를 격려하던 선후배들이었다. 통찰력 있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말은 다 맞고 논리도 틀린 것이 없지만, 각자 뭔가 심술이 나있다.

 

나처럼 진보의 이기심에 제대로 치인 경험이 있다거나, 누군가는 그 논쟁의 오만함에 치를 떨었던 적도 있었겠지. 

 

우리는 철이 없지만, 노회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쩝쩝. 이쑤시개 같은 말을 수북히 쌓은채, 생맥주와 고기만 5만원어치씩 먹고 뿔뿔이 흩어졌다. 

 

 

 

 

 

 

 

 

 

 


2023.09.06 04:37

나는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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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가는 이리카페에 손님이 가득차서, 오늘은 문화다방으로 갔다. 나말고 손님이 한쌍, 30대는 넘는 중년의 남녀인데 존댓말을 주고 받는 것으로 봐서 소개팅 자리인 것 같다. 신경쓰지 않으려 멀찍이 앉았는데, 아까부터 대화가 너무 잘 들린다.

 

소개팅 자리에선 플리마켓의 주인장처럼 자기 인생을 예쁘게 펼쳐놓으면 좋을 것 같은데, 남자는 과외선생님처럼 따박따박 이래야한다 저래야 한다, 별로 대단한 논거도 없이 상대를 가르치려하고 있다.  그러다가 조용한 말투의 여성분에게 몇번 되치기를 당하고는 무안해한다.

 

남자의 말은 슬쩍 듣기에도 헛점이 많아서, 모순을 지적하면 이말 저말을 계속 덧붙이고 있었다. 대화가 무슨 흥부가 입은 옷처럼 누더기가 되어갔다. 그런데도 왜 가르치려 들까. 이런건 상대의 말에서 잘 배우기만 해도 점수를 따기 쉬운 게임인데 말이다. 


‘나는 SOLO’ 의 블랙코미디가 현실에도 생생하다니 놀랍다. 나도 저런 소개팅 해보고 싶다ㅋ. 진짜 잘할 자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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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장정을 마쳤다. 박태환, 다나카, 이지선, 이국종, 모니카. 원래는 이들의 삶을 조밀하게 비추는 라디오 토크멘터리를 기획했는데,  (방송 2주전까지도 확정되지 않은)섭외의 난항. 조연출 없이 정규 프로그램을 병향하며 준비해야하는 현실적인 상황이 반영되어, 깎이고 깎인 뒤, 사실 특별할 것 없이 나에게만 특별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윗선에서는 거물들을 캐스팅하길 원했다.  알맹이가 있는 방송을 위해선 충분한 사전인터뷰가 몇차례 필요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은 거물이었다. 시간을 자주 뺐기도 어렵고 컨트롤 하기도 쉽지 않았다. 

 

몰론 당사자들은 친절했다. 5명 모두에게 나는 구박을 쏟아내고 반존대를 할 정도로 친숙해졌지만, 준비과정에선 대부분 매니지먼트를 하고 계신 분들이 있어, 나의 진심과 다급함 같은 것은 늘 필터링 되어 전달됐다. 

 

‘어느 정도는 그들에게 맡겨두자‘고 마음을 돌렸다. 여백과 불안함을 동시에 안고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고저의 차이를 크게 보이지 않고 잘해주었다. 다들 진심을 담으려고 했고, 작가가 써준 대본을 보고 능숙한 진행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담으려 했다는 것에서 차별성을 획득한 것 같다. 

 

소소하게 보여지는 청취자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배철수 선배의 대타진행에 대해 배척감을 보이던 게시판의 글들도 점점 우호적으로 변하는 게 보였다. 완벽한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다만 준비하는 내내 병고에 시달려, 에너지의 절반 정도 밖에 쏟아내지 못한게 많이 아쉽다.  말도 못하게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지금 내가 그렇다. 이제 말하는 것도 쓰리고 힘들다. 체중은 7kg이 빠졌고 각종 정밀 검사를 받아가는 중이다. 두어달 동안 고생하며 차곡차곡 모였던 시간외 수당은 최근에 나온 병원비 100여만원으로 한방에 탕진했다..ㅠ

 

 

 

 

 

 

 

 

 


2023.08.02 02:52

후지산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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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의 고산병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 전부터 들었다. 다들 야간 산행을 추천했다. 저녁에 출발해 중간 산장에서 묵으며 몸을 적응시키고, 다음날 새벽에 올라가는 1박2일 코스. 우리도 일본어로 된 사이트를 뒤져가며 몇 차례 산장 예약을 시도했지만, 숙소는 이미 패키지 관광객들이 차지한 상태였다. 일본어가 서툰 외국인의 몫은 없었다. 

 

결국 당일에 치고 올라가는 탄환 등반을 하기로 했다. 후지산의 높이는 3777m.  우리가 도전하는 요시다루트는 산의 중턱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실제 오르는 건 1800m 정도라는 이야기고, 이건 한라산의 높이 아닌가. 한라산은 이미 몇차례 올라본 경험이 있는터라, 그럭저럭 해볼만 하다고 생각됐다. 

 

너무 덥기 전에 올라야 한다. 우리는 새벽 4시부터 부지런을 떨었지만, 시작점에는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았다. 앞에 이미 200명 정도가 진을 치고 있던 것. 30분 간격으로 도착하는 버스를 3대나 보내고 나니 6시가 됐다. 뭔가 맥빠진 시작이었지만 출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버스에서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어왔다. 5부능선까지 오르는 차는 45분정도 소요됐는데, 이 안에서도 이미 귀는 멍멍해졌다. 유스타키오관이 위험을 먼저 감지한 것이다. 우리는 의욕적으로 등산을 시작했지만, 7부능선에 도착하기도 전에 공기가 희박해지는 것이 실감났다. 편의점에서 사온 샌드위치 봉지가 낮은 압력에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뇌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자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머리는 멍해졌고 팔다리는 힘을 쓰지 못했다. 근육의 문제라면 등산을 하다가 잠깐 쉬면 회복이 되는데, 산소공급이 약해지니 쉬어도 기운이 돌아오는 느낌이 안생겼다. 준비해 간 산소캔을 열어 깊이 들이마시면 순간적으로 머리가 맑아지긴 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면 몸은 다시 무거워졌다. 


사람들은 계단에서건 길에서건 널부러져 있었다. 200m마다 촘촘히 있던 휴게소도 누구 하나 그냥 지나치치 못하고 다들 주저 앉았다. 

 

여기가 내가 사는 지구가 맞나. 사람들은 걷는다기 보다 꿈틀대는 수준이었다. 천국의 심판대에 도착하기 위해서 천천히 기어 올라가는 연옥의 풍경 같았다.  이렇게 해서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까. 고작 50m씩 가다서다를 반복해서 6km를 오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친구가 숫자를 세면 도움이 될거라고 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딱 100걸음씩. 그리고는 자책하지 말고 편히 쉬어도 좋다고 규칙을 정했다. 후지산은 그런식으로 미분 되었다. 100걸음은 할만했고, 점점 200걸음, 300걸음으로 길이를 늘리는 나를 기특하게 여겼다. 

 

결국 이런 식으로 6시간. 100m를 오르는데 6분씩 잡아먹은 우스운 속도이었지만 6km를 오르고 말았디. 이게 되긴 되는구나. 할 수 있는거구나.  공사장처럼 움푹 파인 후지산 정상에서 감탄한 것은 정상의 풍경이 아니라, 이걸 해낸 우리 자신이었다  

 

   


2023.07.16 06:57

위상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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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수학에 며칠째 관심이 가서 이것 저것 닥치고 읽고 있는중이다. 유튜브나 일반인을 위한 수학책들이 처음에는 근사하고 패기 넘치게 화두를 던지지만, 설명하기 복잡한 부분이 나오면 퉁치며 넘어가는게 좀 짜증나긴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이야기들을 줍줍하는 중이다. 

 

위상수학은 우주에 있는 모든 물체들을 점, 선, 면으로 단순화하여 계산하는 기하학의 일종이다. 이 쪽 세계에서는 도넛과 손잡이 달린 컵은 같은 물체다. 가운데 구멍이 뚫린 원의 형태로 본다. 사실 사람도 도넛과 같은 torus다. 입에서 시작해 똥꼬로 나오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고 그 주변을 육신이 감싸고 있는 형태니까.  

 

위상수학은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 꿰뚫어 보는 학문이다. 계산식이 거의 없어 추상적인 수학이라고도 한다. 위상수학의 대가 중에서는 6살때 시각을 잃은 위대한 학자도 있다.  이 수학자들이 정의한 디자인을 보고 있으면 멀미가 나기도 하는데, 생각을 골똘히 하는데는 꽤 도움이 된다. 

 

인생을 위상수학으로 풀어내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독하게 압축하고 단순화 한 뒤, 기호화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렇다면 허례허식을 다 버리고 본질에 맞추어서 살수 있지 않을까. 혼자 골똘해지는 아침이다. 더우니까 그런가보다.  

 

 

  • 구(sphere)

  • 원환면(torus) -도너스

  • 두 구멍 토러스(2-holed torus)

  • 여러 개 구멍 토러스(g-holed torus)

  • 사영평면(projective plane)

  • 클라인의 병(klein bottle)

  • 안팎이 구분 안 되는 구(sphere with c cross-caps)

  • 안팎이 구분 안 되는 여러 개 구멍 토러스(2-manifold with g holes and c cross-caps)

세잎배듭.webp클라인의병.webp

 

 

 

 

 

문득, 인생을 위상수학으로 풀어내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독하게 압축하고 단순화 한 뒤, 기호화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렇다면 허례허식을 다 버리고 본질에 맞추어서 살수 있지 않을까. 멍한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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