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갔던 소백산 산행. 안내 산악회 버스에선 원래 대화 금지인데, 뒷자리에서 계속 말을 이어가던 아저씨부터가 문제였다. 중반에 산악대장이 와서 주의를 줬지만 그 때뿐. 말을 안하면 큰일 나는 병에 걸린건지 계속 대화를 쫑알쫑알 하는데 스트레스가 쌓였다. "치이익~" 앞문이 열리는 증기 소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다듬고 출발하려는 순간. 아뿔싸. 휴대폰을 차에 놓고 온 걸 깨달았다. 물어물어 인솔자의 위치를 찾았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버스는 이미 우체국 주차장까지 내려갔고, 유일한 대중교통인 시골버스는 2시간에 한번씩 온다고 하니, 별 도리가 없었다. 그저 전화기를 빌려 집에다 "차가 돌아오는 4시 30분까지는 통화가 안되어도 걱정하지 마라"는 메시지만을 남기고, 쿨한척 산행을 이어갔다.
전화기는 사진기이자, 통신수단이자, 지도이자, 정보이자, 외로움을 벗어나게 해주는 친구였다. 오가는 산행객들이 있었지만 갑자기 혼자 원시의 세계로 툭! 떨어졌다.
딱히 챙길 사람도 없는 나홀로 산행에서는 아무래도 피치를 올리게 된다. 그래도 이렇게 사람이 없을리가 없는데… 앞에 있는 등산객을 40분 정도 지나서 만났다. "비로봉이요? 이쪽으로 가는 게 아닌데...국망봉으로 가는 코스에요" !!! 버스에서 인솔대장이 "걸음이 빠르지 않은 사람은 국망봉으로 가지말라. 버스를 놓칠수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냥 밀고 갈까. 하지만 내 실력으로 제시간에 도착할 지 알수도 없었고, GPS가 장착된 휴대폰이 없으니 페이스를 조절할 방법도 없었다.
서둘러 원점 회귀를 해야한다. 온 몸을 휘감는 낭패감. 남들보다 1시간 이상 뒤쳐지는데 이걸 따라 잡을 수 있을까. 나는 바람처럼(?) 달렸다. 바위가 울퉁불퉁한 내리막 길을 뛰니 체중이 실리는 엄지발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신발엔 작은 돌도 몇개 들어가 고문기술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걸 챙길 시간이 없었다. 늦지 않아야한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으려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물었다. "비로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여기서 몇분 거리일까요?"
간신히 원점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올라갈 때도 쉬지 않았다. 버스를 같이 타고 온 산악회 사람을 보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지 않는 걸로 원칙을 정했다. 하지만 산길을 이미 1시간 정도 달린 후였고, 더군다나 혼자 긴장하며 달렸기 때문에 호흡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벌써부터 다리가 흔들리는 걸보니 체력은 이미 털렸구만. 휴대폰이 없었기에 이 상황을 나눌 수도 없었다. 작은 기계의 분실일 뿐이었는데, 완전한 문명과 단절. 고립감. 이번 산행은 정말 강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