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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2 02:52

후지산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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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의 고산병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 전부터 들었다. 다들 야간 산행을 추천했다. 저녁에 출발해 중간 산장에서 묵으며 몸을 적응시키고, 다음날 새벽에 올라가는 1박2일 코스. 우리도 일본어로 된 사이트를 뒤져가며 몇 차례 산장 예약을 시도했지만, 숙소는 이미 패키지 관광객들이 차지한 상태였다. 일본어가 서툰 외국인의 몫은 없었다. 

 

결국 당일에 치고 올라가는 탄환 등반을 하기로 했다. 후지산의 높이는 3777m.  우리가 도전하는 요시다루트는 산의 중턱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실제 오르는 건 1800m 정도라는 이야기고, 이건 한라산의 높이 아닌가. 한라산은 이미 몇차례 올라본 경험이 있는터라, 그럭저럭 해볼만 하다고 생각됐다. 

 

너무 덥기 전에 올라야 한다. 우리는 새벽 4시부터 부지런을 떨었지만, 시작점에는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았다. 앞에 이미 200명 정도가 진을 치고 있던 것. 30분 간격으로 도착하는 버스를 3대나 보내고 나니 6시가 됐다. 뭔가 맥빠진 시작이었지만 출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버스에서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어왔다. 5부능선까지 오르는 차는 45분정도 소요됐는데, 이 안에서도 이미 귀는 멍멍해졌다. 유스타키오관이 위험을 먼저 감지한 것이다. 우리는 의욕적으로 등산을 시작했지만, 7부능선에 도착하기도 전에 공기가 희박해지는 것이 실감났다. 편의점에서 사온 샌드위치 봉지가 낮은 압력에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뇌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자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머리는 멍해졌고 팔다리는 힘을 쓰지 못했다. 근육의 문제라면 등산을 하다가 잠깐 쉬면 회복이 되는데, 산소공급이 약해지니 쉬어도 기운이 돌아오는 느낌이 안생겼다. 준비해 간 산소캔을 열어 깊이 들이마시면 순간적으로 머리가 맑아지긴 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면 몸은 다시 무거워졌다. 


사람들은 계단에서건 길에서건 널부러져 있었다. 200m마다 촘촘히 있던 휴게소도 누구 하나 그냥 지나치치 못하고 다들 주저 앉았다. 

 

여기가 내가 사는 지구가 맞나. 사람들은 걷는다기 보다 꿈틀대는 수준이었다. 천국의 심판대에 도착하기 위해서 천천히 기어 올라가는 연옥의 풍경 같았다.  이렇게 해서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까. 고작 50m씩 가다서다를 반복해서 6km를 오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친구가 숫자를 세면 도움이 될거라고 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딱 100걸음씩. 그리고는 자책하지 말고 편히 쉬어도 좋다고 규칙을 정했다. 후지산은 그런식으로 미분 되었다. 100걸음은 할만했고, 점점 200걸음, 300걸음으로 길이를 늘리는 나를 기특하게 여겼다. 

 

결국 이런 식으로 6시간. 100m를 오르는데 6분씩 잡아먹은 우스운 속도이었지만 6km를 오르고 말았디. 이게 되긴 되는구나. 할 수 있는거구나.  공사장처럼 움푹 파인 후지산 정상에서 감탄한 것은 정상의 풍경이 아니라, 이걸 해낸 우리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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