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일차.
여정이 중반에 돌입했다. 종일 힘들기만 했던 하루. 땡볕의 도로를 걷고 또 걸었다. 모르는 이들과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던 다정한 숲길 따위는 없어지고. 그야말로 ’한번 뜬 백일이 불사신처럼 작열하는‘ 땅에 진입했다.
길에 답이 있고, 걷는 것에 답이 있을거라는 처음의 집중력도 이제는 흐트러졌다. 길에 무슨 답이 있어. 땡볕에 비싸게 음료수를 파는 장사치들만 있는 걸.
얼른 오늘의 목표 33km를 돌파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낯선 서양인들은 선수처럼 때론 경쟁자처럼 느껴졌고, 이 불볕의 레이스에서 나도 너무 외롭기만 했다.
지겨운 행군을 이겨내기 위해 유튜브를 틀었다. 내가 좋아하는 과학 유튜브. 밤하늘은 왜 까맣게 보이는가. 다른 행성에서 물을 찾는 것이 왜 중요한가. 제임스웹 망원경과 수면의 중요성. 아데노신까지. 저 머나면 우주에서 바라본다면 지금의 순례길 800km는 개미의 꿈틀거림 조차 되지 않을텐데. 이 하찮은 움직임에서 나는 무얼 발견 할수 있을 것인가.
오늘은 몸도 마음도 무너진 하루였다. 몇몇 젊은이들은 가볍게 버스를 타고 이 길을 뛰어넘었다. 즐거운 대도시 관광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것 같았다. 나는 그런 요령도 없다. 내일이 크게 기대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생에는 그렇게 버텨야 하는 날도 있으니 순순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내일은 26km, 오늘보다는 쉽다. 그러니 발가락아. 잘버텨줘.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