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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7 23:23

15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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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차
어제의 툴툴거림이 무색하게 오늘은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다. 날은 걷기좋게 흐렸고. 비도 몇방을 내렸지만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었다. 땅도 걷기 좋은 흙길이에서 발도 편안했다.

한국 사람을 좀 피해서 왔는데. 오늘은 아일랜드에서 온 3형제와 잉글랜드 여자분, 미국 메사추세츠에 사는 청년과 이야기를 나눴다. 의사는 통하고 정보는 나눴지만  역시 언어의 벽이 커서  그분들이 먼저 답답했을 것이다.


깨끗한 알베르게와 쾌적한 시설에서 문제 없이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나는 스페인 사람처럼 오수를 즐겼다. 아무런 특별한 일 없이 이렇게 하루를 보내도 되는걸까. 여백이 절반인 평화로운 날.






2024.06.07 03:29

1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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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일차.


여정이 중반에 돌입했다. 종일 힘들기만 했던 하루. 땡볕의 도로를 걷고 또 걸었다. 모르는 이들과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던 다정한 숲길 따위는 없어지고. 그야말로 ’한번 뜬 백일이 불사신처럼 작열하는‘ 땅에 진입했다. 


길에 답이 있고, 걷는 것에 답이 있을거라는 처음의 집중력도 이제는 흐트러졌다. 길에 무슨 답이 있어. 땡볕에 비싸게 음료수를 파는 장사치들만 있는 걸. 


얼른 오늘의 목표 33km를 돌파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낯선 서양인들은 선수처럼 때론 경쟁자처럼 느껴졌고, 이 불볕의 레이스에서 나도 너무 외롭기만 했다. 


지겨운 행군을 이겨내기 위해 유튜브를 틀었다. 내가 좋아하는 과학 유튜브. 밤하늘은 왜 까맣게 보이는가. 다른 행성에서 물을 찾는 것이 왜 중요한가. 제임스웹 망원경과 수면의 중요성. 아데노신까지. 저 머나면 우주에서 바라본다면 지금의 순례길 800km는 개미의 꿈틀거림 조차 되지 않을텐데. 이 하찮은 움직임에서 나는 무얼 발견 할수 있을 것인가. 


오늘은 몸도 마음도 무너진 하루였다. 몇몇 젊은이들은 가볍게 버스를 타고 이 길을 뛰어넘었다. 즐거운 대도시 관광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것 같았다.  나는 그런 요령도 없다. 내일이 크게 기대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생에는 그렇게 버텨야 하는 날도 있으니 순순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내일은 26km, 오늘보다는 쉽다. 그러니 발가락아. 잘버텨줘. 부디  




2024.06.05 23:51

1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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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차 

어제 비빔밥으로 대동단결한 뒤 한국팀이 엄청 커졌다. 오늘도 한 알베르게에서 10명 이싱 집결하는 것같았다. 항상 함께 모여서 열띄게 고국의 이야기를 하는게 내가 생각한 순례길의 취지와는 좀 다른 것 같아서 일탈하기로 마음먹었다. 조금만 더 간다는게 적당한 마을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 34km. 오늘도 발바닥에 불이 나버렸다.

 

 

이제는 여러 형태의 알베르게 대출 적응했다 싶었는데 오늘도 긴장이 된다. 순례자로 보기 힘든 보라색 머리 서양 아줌마와 노란머리에 수염을 기르고는 킬킬대는 동양인이 거실에 있는데, 이건 보통 살인영화의 미장센 아니던가

 

 

외로운건 왜 힘든 것이고. 혼자 사는 것은 왜 괴로운 것인지 알기위해 나를 내던졌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무사히 오늘밤이나 잘 넘겼으면…

 

 

 

 

 


2024.06.04 23:52

1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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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차

오늘은 내 생일. 서울에서 축하연락이 분주하게 전해져와 까미노에 집중하지 못했던 하루였다. 어제 연박을 하는 바람에 오늘은 40km나 걸었는데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도달하는 것이 전부였다. 생일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한껏 들떠서 나풀나풀 보내던 하루여서 좀 창피하다.

 

오늘은 한인 알베르게 오리온에 묵게 되었는데 저녁밥이 비빔밥이라는 이야기에 여기저기 한인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여기가 이렇게 단순하다.  그러면서도 그룹 그룹들이 서로 쉽게 말을 걸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것이 인상깊다. 이상한 이야기들로 자신의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테지. 여기가 이렇게 또 복잡하다. 

 

먼저 만난 일본인친구는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사람들과 정상회담 같은 것을 펼쳤다고 하는데, 부럽기만하다. 나는 조금 갇혀있는 여행을 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2024.06.04 09:33

1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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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차


발상태가 너무 메롱이라서 오늘은 하루 쉬며 브루고스에 머물렀다. 쉰다고 쉬긴 했는데. 새벽이 떠나는 순례자. 낮에 텅빈 알베르게. 점심쯤부터 벌써 도착하는 지친 순례자들을 보면서 마음이 같이 분주해지던 하루, 열하루만의 휴식이었는데도 편하지 만은 았았다. 내일은 잘 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합이 잔뜩 들어가게 된다.


산티아고 길을 걷다보면 물자도 부족하고 인맥도 부족하고 인프라도 부족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사랑이 단순해지기 마련이다.

원시인처럼 그래서 자연스럽게 작은 일에 치사해지고 작은것에 영치가 없어지고 작은 이익에 본성을 드러내곤 한다.


쉬면서 넷플릭스 에이트쇼를 몇편 봤다. 자원이 없고 단순한 하루의 모습.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여기 순례길의 풍경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생각되어 끔찍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나는 권위도 명함도 스펙도 없다. 길 위의 사림들은 한 인간으로서 모두 동일하다. 보잘것없는 상황과 관계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법을 아는것.  내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것. 내 진짜 모습을 보듬어 주는 것. 순례길에서 날마다 마주하게 되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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