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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1 08:05

합정동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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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동네라 말하긴 뭔가 쑥스러운 곳

2018.12.24 08:29

묘한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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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노인 집에 불이 나가니
전파사에서 팔순 노인 오셔서
두꺼비집을 교체해주고 가신다










2018.12.22 05:32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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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10여년전과 비슷하다
진보는 자신의 이기심을 포장해
현실에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요구하고

보수는 시커먼 자신의 속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실수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일 놈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시행착오라면 나는 기다려 줄 마음이 있다.
땅에 두발을 딛고 있는 한 불완전한 일은 계속될 것이다.
현실이 불만족스럽다고 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전력으로 달려가던 자들과 손을 잡아서는 안된다.
아무 말도 입밖으로 뱉지 못하던 야만의 시절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택시기사들이 자유한국당과 손잡고
문재인 쳐죽일 놈이라고 말한다.
제발












  

2018.12.16 02:01

태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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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평동이라는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할마시들은 넝마를 하고 엄마들은 파출부를 나가는게 당연했다.
공부하기 싫으면 너도 공장다녀.
형들은 중학교를 다니다말고 토끼털 공장에 취직하고는 했다.
밤이면 싸우는 괴성이 들렸다.
사람이 싸우는게 아니라 짐승의 비명같은거였다.
부엌칼을 들고 쫓아오는 남편을 피해 도망가는 속옷차림의 아줌마들도 흔했다.

태평동.
가난에 뼈가 닳아지는 이동네엔 너무 한가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텔레비전을 보다가 32년 살던 내 동네를 비춰주는 다큐가 나왔다.
반가운 명랑이발관.
주인 아저씨는 이발관에서 항상 화투판을 열어줬고 판마다 100원씩 고리를 뗐다.
그리고 기술이 부족해 내 친구 인용이의 귀를 (살짝)자르고
내가 입대에 할 때도 이곳에서 머리를 잘랐다.

동네사람들은 대부분 서울로 상경하기 전에 잠시
여기서 기틀을 잡으려 했지만 결국 주저앉았다.
운이 좋아서인지 성남을 떠난지 10년쯤 됐다.
그래도 서울대를 네다섯 보내던 모교는 양아치 학교가 됐다.
정치인들은 선거때마다 재개발을 하겠다고 고도제한을 풀어주겠다고
사십년째 같은 거짓말을 한다.
동네는 더 가난해지고 있다.












2018.12.05 07:56

H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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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태어난 모양보다
태도에 설득당한다

자신을 방치하는 것이 미덕은 아니다.


뭉툭할 때까지 닳고 닳게 움직이는
성실한 사람도 귀하지만
매일 아침 깎아 놓는
뾰족한 연필 같은 태도에
눈길이 가지 않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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