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한구절 한구절 말이 신나고 유쾌할 때가 있다. 모임을 마치고 헤어질 때까지 웃어서 턱이 얼얼하고 두통이 생기는모임.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도 미소가 가시지 않는 모임. 그렇게 웃어본게 언제일까. 너무 오래됐고 그립다.
반향실
장난스런 투표
친구들 중 윤석렬 혹은 안철수를 뽑았다는 사실이 조용히 발각될 때가 있다. 멍청하고 악한 윤석렬 보다도, 이 엄청난 권력을 무책임하게 그 또라이에게 부여한 그 녀석들이 더 밉다. 대단한 실망감에 예전처럼 대하기가 참 힘들고, 그래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는 중이다. 장난스런 투표, 잘못된 투표에 대한 책임을 왜 나눠져야하는지 모르겠다.
봉지
오늘도 쓸데 없는 욕심을 가득 샀다. 두손에 다 담지 못하고 결국 일회용 봉투도 샀다. 아랫배처럼 툭 튀어나온 내 욕심을, 찢어질 것 같은 이 욕심을 어디 산에 몰래 묻고 싶다. 썩는데 300년이 걸린다는데, 욕심이 나보다 4배는 오래산다.
이진법
90년대 전자공학과 시절. 게임 아이템을 도난한 것을 범죄로 여길 것인가에 대한 법적 논의가 있었다. 지금은 게임 아이템에 천문학 적인 돈이 지불되는 시대니, 당연한 판결이 나겠지만. 당시의 요점은 '게임 아이템을 재화로 인정할 수 있느냐'였다.
현재는 게임 하나가 기가바이트 단위로 만들어 지고, 프로그램을 코딩할 때도 모듈에 모듈을 더하는 수준으로 제작되어 그 원형을 알수 없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담기는 용량이었기 때문에, 조금 자세히만 살펴보면 연습장 낙서를 뜯어보듯 그 내용을 헤어릴수 있는 수준이었다.
소프트웨어는 기본적으로 정보다. 0101110111의 배치다. 게임 아이템이라는 것이 연습장에 나열한 이진법의 숫자일 뿐이고. 아이템이 다른 사람에게 이동되었다 하는 것은, 그 숫자가 조금 고쳐진 것 뿐인데. 이것을 어찌 도난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다시 숫자를 바꾸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그런 게임아이템에 집착하고 돈을 지불하는 것 자체가 한심한 죄라는 '게임 원죄설'이 오히려 힘을 받기도 했다.
인생에 대한 집착은 무엇이 다른가. 인간은, 돈은, 명품백은, 건물은 무엇이 다른가. 이 모든 재화는 01011100의 아라비아 숫자 대신 원자라는 숫자를 이용한 이진법 아니던가. 흙으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삶과 죽음도 원자가 조합했다가 흙으로 재배치 되는 일일 뿐이다.
사는 것은 널따란 바둑판에 시간이라는 돌을 두는 일이다. 포석과 행마, 싸움과 집짓기. 절망과 희망이라는 원자. 흑돌과 백돌을 내려놓는 일이다. 한판 두고나면 그냥 다 엎질러지는 짧은 여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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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면 세면대부터 찾는다
물을 틀어 놓고 얼굴에 비누칠을 하면
시간이 물감처럼 퍼져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