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세번째 일러스트.
의뢰받을 때마다 맘껏 그리지를 못하고
허겁지겁 서둘러서 제출한 미완의 상태.
결과물이 나올때마다 너무 아쉽다
이번이 세번째 일러스트.
의뢰받을 때마다 맘껏 그리지를 못하고
허겁지겁 서둘러서 제출한 미완의 상태.
결과물이 나올때마다 너무 아쉽다
작전타임 스무번은 부른 농구경기를 본 느낌. 지나친 회상 장면으로 스포츠의 속도감이 너무 끊겼다. 차라리 전반전 경기를 압축하지 말고 좀더 보여줬다면.
고기반찬을 기대하고 갔는데 파절임같은 신파가 늘어져 있어 맥빠진 밥상이 됐다. 송태섭은 송태섭 대로 산뜻한 날라리인게 좋았는데. 경기후 하늘나라에 있는 형을 쳐다보거나, 노력하고 성공해 미국까지 진출하니.
어릴적 본 미니시리즈가 갑자기 주말가족드라마로 변해 버린것 같아 어리둥절한채 극장을 나왔다
최근의 만남들은 유난히 공허했다. 대화를 할수록 내 영혼을 박박 긁어내는 것 같았고 나중에는 목에서 칠판 소리만 났다. 반가운 마음으로 약속을 잡았지만, 이런 헛헛한 만남을 하고 나서는 한동안 톡으로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던 강원국. 그는 사람을 만날 때 농담거리, 칭찬거리, 질문거리를 준비해 간다고 한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는 것인데, 만남에도 성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가끔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주파수에 맞춰서 금세 공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젯밤에 집어든 <유튜브는 책을 집어 삼킬 것인가> 이책도 그랬다. 탄산음료처럼 말초적 미디어에 지쳐있었던 나. 오래 생각하고 정리한 이런 이야기를 읽으니 골짜기에서 약수물을 한컵 마신듯 속이 편하다.
쓰기는 말을 반영구적으로 만든다. 말은 휘발되지만 문자는 새기고 고정시킨다. 사실상 쿠텐베르크의 활자혁명으로 중세는 끝나고 근대는 시작된다. 말하기에서 읽고 쓰기로 변하면서 지식은 편하고 넓게, 그리고 긴 유통기한을 가지고 공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말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만 같다. 유튜브는 글을 쓰기보다 말을 공유하고 띄운다. 그 안에서 생존한 디지털 네이티브는 다른 문해력늘 가지고 있는 중이고 우리는 이런 소통방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숙고하는 중이다. 꾹꾹 눌러쓴 편지가 아니라 틱톡으로 프로포즈하는 요즘 세대.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40-50대의 안간힘 같은게 느껴진다.
이상하게 인스타그램에서 요즘 말을 꺼내기가 힘들다. 피드에 한바닥을 썼다가 결국 두줄로 줄여놓은 오늘. 신학기에 만난 친구들 앞에서 장기자랑 하는 자리처럼 쭈뼛쭈뼛하다. 네모난 교탁 앞에 선 기분인데. 쟤네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