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웃기는 걸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초면에 빵빵 터트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짧게는 한달, 길게는 3년씩 걸려가며 상대와 충분히 친해졌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웃음엔진에 시동을 건다.
대학교 입학 후 2학기에 들어간 기독교 동아리에서도 한학기 정도는 그저 잠복했다. 나는 그저 말없이 웃기만 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겨울방학 때 선배들이 소그룹을 나누며 "천이는 수줍음이 많으니까, 활발한 태웅이랑 같은 조를 하면 좋겠다"며 인사발령(?)을 냈다.
이제쯤 본색을 드러낼 때가 됐군. 생각할 쯤 겨울 수련회가 시작됐다. 밤새 철야 기도회로 눈물 콧물 빼면서 다들 기진맥진해 들어온 숙소. 내일 일정이 있어 일찍 자야한다고 선배가 불을 껐는데, 성령의 불을 받아 각성한 대학생들이 쉽게 잠들 수가 있나.
나는 허공을 향해서 유머시리즈를 콩알탄처럼 툭툭 던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이라 집중력이 있었고, 모두의 귀도 열려있었다. 푸ㅋ 풋ㅋ 푸드듴. 잘 달궈진 후라이팬에 올려놓은 후랑크 소세지처럼. 시간차를 두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중에는 완전히 나의 무대가 되어 오르락 내리락, 그날의 웃음을 파도처럼 지휘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나의 데뷔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