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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9 08:34

웅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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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시사회에서 <웅남이>를 봤다. 손익분기점 90억. 나 같으면 대단한 압박감에 정육점 고기처럼 진공압축이 되었을 법한데, 살이 좀 빠졌다는 이야기만 들리고 성광이는 꿋꿋하게 잘 이겨나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자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저기 저 장면에서 박성광은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피카레스크식 구성도 아닌데, 스크린 밖 상황만 계속 그려졌다. 사실 배우들의 연기력은 들쑥날쑥. 성광의 인맥이 작용해 좋은 배우들이 드문드문 들어왔지만, 그저 여기저기서 자기만의 연기를 하고 있었다. 무명의 배우들은 개성을 드러내기 보다 그저 웅얼웅얼하는 느낌이었다. 감독의 지시하에 일목요연한 질감 같은건 보여주지 못했다.

 

박감독은 현장에서 연기자들의 스케줄을 잘 챙겨줬다고 한다. 어쩌면 캐스팅을 도와준 것만으로도 배우들에게는 은혜를 입었다는 생각이 먼저 앞섰을거다. 아니면 '나보다 더 전문가'인 연기자들에게 이번엔 한수 배우는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장에서 욕 먹지 않는 감독이 끝까지 욕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방목하지 않고,  채찍을 들고 당근을 들고, 저기서 좀 더 자신감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내가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작은 배우들로만 캐스팅을 해서, 강하게 진두지휘를 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유쾌한 실험정신은 드러나지 않았을까. 이미 끝난 일에 대해서 성광이보다 더 걱정을 한다. 

 

사실상 대형영화가 없는 상황이다. 하늘이 준 대진운, 그것조차 살리지 못하는 처참한 결과. 세상이 같이 망했으면. 전쟁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은 다른 이들보다 박성광은 얻은 것이 많다. 관중석에서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나같은 사람들보다는 프로 리그에 뛰어들어 최하위를 하는 선수가 훨씬 위대하다. 지금의 경험은 무조건 플러스. 백퍼센트 플러스다.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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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그 아침에 6학년 소년은 통곡을 했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하는 성격이라 늘 학교에 일찍 갔는데, 그날은 수업이 시작되는 9시나 되어서 학교에 도착. 힘없이 걸상을 끌어당겨 자리에 앉았다. 

 

제제와 마찬가지로 빈민촌의 쭈굴쭈굴 가난했던 나와 그나마 의지할 수 있었던 뽀루뚜까 아저씨의 부재. 나도 늘 집에 혼자 있었고, 이제는 목에 대롱대롱 매달릴 수 있는 아버지가 없다는 게 실감나던 순간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4년만에, 나만의 장례를 치르던 그 아침은 아직도 생생하다.

 

 

 

 

 

 

 

 

 

 

 

 

 


2023.03.28 07:50

완전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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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의 엔딩은 늘 "잡히지 않은 범죄는 없다"는 최불암 선생님의 말로 끝났다. 하지만 어린 나는 이 클로징 멘트를 그저 문학적 수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행정력이라고 생각했고 저 100% 검거율을 달성하기 위해서, 가끔은 억울한 사람이 잡혀가지는 않았을까. 혼자 걱정을 하기도 했다.  

 

 

나는 죽기 전에 한번쯤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완벽하게 숨어보고 싶기도 하다. 관료주의로 점철된 행정력을 통쾌하게 기만하고 싶은 욕망같은거다  

 

 

사실 이 범죄 리스트, 혹은 버킷 리스트에 가장 떠오르기 쉬운 답은 '살인'일거다. 허나 살인은 다른 사람의 수만가지 기회를 찢어 발기는 일이라 도저히 내키지가 않는다. (이건 진심이다) 다른 사람에게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끔찍한 범죄란 과연 무엇이 있을까. 나쁘지 않은 범죄. 하긴 그걸 범죄라 부를수는 있을까. 

 

 

 

 

 

 

 

 

 


2023.03.27 11:53

OOO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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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끔 이말년, 주호민, 이동진이 모여서 유튜브를 한다. 서로에 대한 은근한 리스펙이 있어서 꽤 잘 어울린다는 느낌. <미래에는 사라질 것 같은 직업 월드컵>을 했는데, OOO 월드컵은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도 많이 다룬 컨텐츠다. 이상하게 재미 없어서 잘 안보게 됐던 내용. 

 

 

셋이 함께 해보니 장단점이 뚜렷하게 보였는데, 이말년 주호민의 움직임이 확실히 더 경쾌하다. 둘은 변호사와 검사가 되어 생떼도 쓰고 우기기도 해보지만, 이동진은 판사의 역할에 머물러 있다. 맞는 소리가 아니라, 틀리지 않는 말만 하는 사람. 가끔은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기도 해야하는데, 얼룩이 묻을까 늘 싸움에서 한발자국 물러나있다. 저 소년 같은 진흙탕 싸움에 자기도 끼어들고 싶을텐데. 부러울텐데  

 

 

 

 

 

 

 

 

 

 

 

 

 

 

 


2023.03.27 08:36

어제는 무얼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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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마포구민 체육시설을 달렸다. 무릎에 고질병이 있는 나는, 집에서 꽤 먼데도 우레탄이 깔린 이곳을 찾는다. 새벽이라 그런가. 발끝을 톡톡 두드려 봤는데 바닥은 아직 딱딱했다. 준비한 골전도 이어폰을 끼고 나이키런클럽 앱을 연다. 


나는 상냥한 목소리의 아이린 코치와 함께 달린다. 목소리가 무척 매력적이어서 항상 궁금했는데, 지난달 나이키 지면광고에서 그녀의 실물을 확인하고는 그냥 사무적인 감정만 남았다. 오랜만의 달리기. 인터벌 러닝이 부담이 없을 것 같아서 35분 코스를 선택했다. 10K러닝 5K러닝 마일러닝을 섞어 달리고 중간중간 1분의 휴식시간을 준다. 거리가 짧을수록 에너지를 폭발시켜야 하고 긴거리는 호흡을 조절하는데 중점을 둔다. 


아이린은 홀리는 목소리로 조금만 더 달리라고 해놓고서는, 다 끝난 것처럼 말하다 또 달리라고 한다. 그녀는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에선 쌍욕이 튀어나왔는데, "여러분의 환호소리가 들리는데요~"라며 위트있게 받아쳤다. 이런 센스가 좋고 섹시하다.

 

돌아와서는 간단히 세수하고 요가시간을 기다렸다. 일요일에는 보통 인요가를 한다. 인요가는 음(-)의 요가인데 몸을 이완시키는 요가를 하고 있으면, 일주일간 곤두 서 있던 정신을 끌어 당기는 느낌이 좋다. 달달달달 다리를 떨고 있는 마음이 차분하고 나른해진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코고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한시간이 미끌어지듯 지나간 뒤, 내 허리처럼 쭈욱 펴졌던 매트를 말아서 제자리에 꼽고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능숙하게 몸을 제끼던 앞열 여자수강생은 주차장에 서서 길게 담배를 뿜어제낀다. 이 한까치의 담배가 얼마나 생각났을까. 누구나 자기만의 수련방법이 있는 셈이지. 

 

원래는 스포츠마사지 배우던 사람들과 점심을 하려고 했다. 며칠전부터 한 약속인데, 막상 내가 간다고 하니, 한분이 일정이 있다고 해서 취소됐다. 오히려 좋아. 잘됐다 싶었다. 사실 이 학원은 두달까지는 재수강을 할 수 있어서 수업을 들어도 좋지만, 사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강사 아저씨의 스타일이 맘에 안들어서 피했다. 게다가 오늘은 그의 마지막 강의날. 끝도 없이 자기 사업 이야기만 늘어놓을 것이 뻔했고, 역시 그랬다고 한다. 수강생들이 들어오는 단체톡방이 있는데, “이제 6년간의 강의를 종료한다”고 하니 다들 큰절을 올리며 그간 감사했다고 줄줄이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는 "그런 식으로 불성실하게 강의하지 말라"고 따금하게 불평을 해야하는데, 혹시나 자기한테 돌아올 불이익을 생각하면서 참는다. 무작정 칭찬을 하는 것도 무작정 참는 것도 다 무력하게 학습된 어른들의 스타일이란 생각이 든다. 

 

오후에는 집에서 빈둥거렸다. 요즘은 나 자신을 밧데리가 자주 닳는 낡은 휴대폰이라 생각하고 필요할 때마다 충전을 해주자는 생각을 한다. 마루에 이부자리를 두껍게 펼치고 모바일 게임을 하며 뒹굴거렸다. 평소 같으면 마음이 무겁고 한심했을텐데,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we play>는 캐주얼 게임을 찾아서 주물럭대봤다. 세상에나!! 이제는 음성으로 하는 게임도 생겨났다니. 나는 음소거를 했지만, 마이크를 켜놓은 상대편에서  "그것봐! 내 수만 보지 말라고 했잖아"라는 탄식의 혼잣말을 하거나, 자기랑 놀자고하며 징징대는 꼬마 동생의 목소리까지 그대로 노출시켰다. 


내가 좋아하는 <라이어게임>방에도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목소리가 우락부락한 경상도 아저씨 때문에 좀 긴장을 했다. 아저씨는 쌍욕을 섞어가며 말했다가 노래를 불러가며 설명하다가 혼자 신명이 났다. 하지만 범인을 찾는 이 게임에서  추리하는 족족 틀린답을 말했는데, 자기 말로는 전직 형사라고 한다. 엉뚱한 사람 잡아다가 법정에 몰아세울 스타일이었다. 어쨌든 "이제 그만 교회를 가야한다"며 자리를 뜰때까지 그 방의 웃음 버튼이 되어주었다. 아저씨가 사라지자 방은 활기를 잃었고 나도 눈치를 봐서 슬그머니 종료버튼을 눌렀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낮잠으로 이어지던, 평화로운 오후였다. 

 

4시쯤 낮잠에서 깨어났다. 휴일이면 6시에 마감하는 헬스장에 허겁지겁 뛰어 올라갔다. 사람들은 악착같이 운동하고 있었고, 기구에는 자리가 거의 없어서 루틴이나 순서에 상관없이 나도 마구잡이로 해제꼈다. 아침에 달린게 역시 무리였나. 오른쪽 무릎의 심상치 않은 통증에 성질이 난다. 등산까지는 가능해도 달리기는 역시 욕심인가보다.  윗몸일으키기 100개를 마지막으로 하고나니, 몸에서 꼬랑내가 나는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엔 방송에 사용할 플래카드 두개를 인쇄집에 가서 챙겼다, 갈갈이 박준형 10주년 축하 현수막과 초대석 신문희의 것이다. 현수막 잘뽑혔네. 내일은 대곡 '아름다운 나라'를 실제로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설레였다. 손에 짐이 많았지만, 슈퍼에도 들렸다. 휴일 한끼는 제대로 먹고 싶다는 생각에 까나리 액젓과 배추 한통을 샀다. 집에서 짜파게티를 끓이고 파무침도 곁들일 생각이다.

 

사이좋게 수다를 떨며 요리를 하다가 어머니 모시는 얘기를 하니 급하게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아내가 농담처럼 반대하는게 이상하게 더 서운하다. 엄마의 고독같은 건 말장난으로 할 얘기가 아니라는 반발감이 들더니, 나혼자 생각이 깊어졌다. 아내는 내 눈치를 살폈다. 이런 이야기를 괜히 심각하게 해서 분위기만 험학하게 하지 말고, 주말엔 어머니를 좀 모셔오고 아내에게도 기분 좋게 설득하자는 마음으로 작은 결론을 내렸다. 내가 더 부지런해야 한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했는지 찬바람을 쐬고 동네 편의점에서 쓰레기들을 몇개 집어왔다. 메가톤바와 비비빅을 먹고, 고구마형 과자도 산적처럼 우걱우거 씹었다. 내 몸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게 느껴졌다. 아까했던 윗몸 일으키기 100개가 수포로 돌아가는게 아까웠지만,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 이런 뗑깡은. 우리 엄마의 모성애를 거두지 못하는 불효자의 애도의 표시였지만. 이모저모로 내가 한심한건 어쩔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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