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의 큰 줄기는 타임슬립과 멀티버스다. 착하고 열심히 살아 적금처럼 희망을 찾는 이야기는 허무맹랑하니까.
노력하면 언젠가 잘될거야.
개천에서 용이 나잖아
이런 식의 자수성가 이야기를 믿기 위해서는
다른 우주로 떠나거나
과거의 나를 찾아내는 것보다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게 됐다.
요즘 드라마의 큰 줄기는 타임슬립과 멀티버스다. 착하고 열심히 살아 적금처럼 희망을 찾는 이야기는 허무맹랑하니까.
노력하면 언젠가 잘될거야.
개천에서 용이 나잖아
이런 식의 자수성가 이야기를 믿기 위해서는
다른 우주로 떠나거나
과거의 나를 찾아내는 것보다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게 됐다.
성경을 제대로 읽고 싶었던 날들
나는 거기에서 정말 뭔가 나올줄 알았다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후배가 말했다. “그래도 사람을 보지 말고, 공약을 보고 뽑아야 하지 않나요?”
과거의 선거는 묵직한 슬로건과 정치철학이 이끌었다. 최근 선거에는 짧은 글짓기 같은 틱톡공약이 판을 흔들고 있다. 광고회사의 브레인스토밍처럼 보좌관들이 자동기술식으로 줄줄줄 써내려가고, 후보자는 다음날 그걸 읽기만 하면 끝. 근거도 대책도 없다. 우선 1억을 지급하고 매년 150만원을 주겠단다. 발전기로 펌프를 가동시키고 다시 물을 떨어뜨려 발전기를 돌리는 무한동력엔진 같은 소리다. 당분이 줄줄 흐르는 카피가 좌판에 놓였고, 편의점의 물건을 고르듯하는 선거. 이런식이라면, 달필이었던 이완용이 김구선생보다 훌륭한 지도자인게 당연하다.
지구가 한바퀴를 돌았고. 1년이 또 지났다. 태양계의 움직임처럼. 선수의 발끝을 벗어난 축구공처럼. 살아온 궤적을 보며 한 인간의 나갈 방향을 예측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까. 기득권의 카르텔, 무능한 참모, 친인척의 비리. 김병현의 볼끝처럼 어디로 튀어나갈지 알수 없는게 현실정치겠지만. 우리에게 마이너리티리포트 같은 예언자가 없는 한. 미래를 예측하는 작은 단서는 ‘그의 과거’를 찬찬히 들여다 보는 것. 답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5지선다가 나왔을 땐, 분명한 오답부터 지우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어디에 마킹해야할지. 결론은 나오기 마련이다.
밤이면 일주일째 화장실에서 이상한 전기소음이 들려왔다. 화장실 형광등을 떼어 내보고 천장을 열어보고 윗층에도 문의를 해봤는데 알수가 없었다. 두꺼비집을 내려도 소리는 계속됐다. 패턴이 일정하지 않게 위잉위잉 울부짖는 소리는 당연히 우리의 수면을 방해했고. 혼자있는데 들릴때면 아내는 공포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일주일만에 찾아낸 얄궃은 범인은 욕실 수납장안에 쳐박아 두었던 전동칫솔. 지혼자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던 것이다. 이 소리가 욕실벽을 타고 증폭되어 우리를 건드려왔다. 별거 아니지만 그동안 괴롭혔던 산적한 문제들. 그 중 하나가 어이없게 해결됐다. 다른 것도 이렇게 차근차근 풀어 가보는 걸로. 그래. 그러자
큰 열람실에서 기약도 없는 공부를 하다가
코코아나 한잔 마시자며,
친구의 발을 툭 건드리고 싶은 날
후배들의 흔적을 기대하며 학생회관에 들리지만
깡깡깡깡 히터 소리만 들리는 날
벌써 그런 날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