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이 형
비탈길 사람들의 신발은
앞꿈치가 먼저 닳는다
성남시 태평동은
대학생들이 뿌듯해지고 싶어
그림을 그리러 오는 동네
안방의 실크 벽지에는 그릴 수 없던 이
편한 세상을
남의 집 담벼락에 열두 병풍 펼치고는
양반 걸음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행복한 그림이
크게 그려진 곳은
북한과 우리 동네 밖에 없을거야
그러니 다들 웃어
할머니의 뒷축을 닮아 갈라진 페인트와
팔락거리는 입꼬리는
주차장에서 한 가지 표정으로
일하는 누나를 닮긴 했다
눈 내리는 날
버스 노선도가 바뀌고
술잔도 시멘트 언덕처럼 기울어지면
불행도 자산이 되는 시간이 온다
패자중에 패자가 승자가 되는
불운의 경주가 시작되면
영춘이 형은 소주를 마시기 전
숨을 한번 들이키고
무산소 잠수부처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오래 머무른다
PVC 배관통이
하늘만 보는 잠망경으로 쓰인 골목은
입 냄새가 날 만큼 서로 가까웠고
두고 온 열쇠를 찾으러 옥상을 뛰어넘다
핀볼 게임의 쇠구슬처럼
부딪히다 빠져버린
영춘이 형은
이제 평지를 걸을 때도
계단을 걷는 것처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