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내인 생에 쨍하고 해가 뜬줄 알았다. MBC에 입사했다. 윤기나는 먹음직스러운 직장이었다. 일년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먹고 있는 일상은 콜레스테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종일 TV를 본다. 머릿속은 화면조정시간 처럼 '띵'하다. 분명 세상을 튀겨먹을 수도 있는 중요한 자리인데, 누군가는 정말정말정말 간절히 원하는 자리인데, 나는 TV밖에 앉아있는 시청자에게 떼떼떼떼하는 짧은 농담을 던질 준비밖에 안되어 있다.
큰 적을 앞에 두고 지금 조합은 세대에 따라 갈라졌다. 대부분의 좌파들이 그러했듯이 MBC역시 볼세비키 주의자와 트로츠키 주의자로 나누어졌다. 볼세비키는 적과의 대전에 있어서 내부적 독재체제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해왔다. 그들은 싸움에서는 강력했고 가공할만한 세력이 되었지만 역사가 보여주듯이 그들은 결국 사회주의 파시즘 민중을 억압하는 또다른 적이 되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아름다웠지만 결국 그 비효율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짧은 수명으로 역사속에서 사라졌다. 선배들은 우선 조합을 살리자고 하고 후배들은 절차적 비민주성속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 긴장이 총회라는 이름으로 3일간 지속되었고 그 안에서의 발언으로 상처받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것은 소모적이고 때로 파괴적이었다. 누구도 설득할 수 없었다. 지도부 총사퇴. 지도부는 촛불세대와 운동권세대와의 차이를 깨달았다고 말하며 이를 인정하고 차세대에게 리더십을 물려주며 물러나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감히 생각해보게 된다. 과외 시대와 자율학습 시대의 차이가 아닌가라는 생각. 어린 후배들은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완전한 답을 요청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선배들은 함께 문제를 풀어가자며 괴로움을 숨긴채 이야기하지만 후배들은 나를 완벽히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겠다는 옹심을 보인다. 희대의 사기꾼, 반민주세력을 앞에 두고 누군가는 효율원리에 경도되어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 있다. 하지만 감정은 해소될 수있는 출구만을 찾는다. 공허하다. 그들은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죄송하지만 나는 큰 민주주의를 위해 작은 민주주의가 희생되는 상황들을 기꺼이 감내하려한다. 지도부의 판단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 누가 되더라도 선택은 언제나 확률이다. 결과는 불균형하며 희생도 따른다. 그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나는 따라가겠다.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1%만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