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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0 02:58

술래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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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는 전봇대에 고개 숙이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내 나이 마흔 여덟까지 숫자를 세고 나니 세상이 조용해져 실눈을 떠버렸다. 오래 참은만큼 꿈은 더 깊이 숨어버렸구나. 아빠도 형도 이 좁은 골목에서 술래를 못 찾고 길을 잃었다.

 

양자역학인가. 꿈은 내가 쳐다보면 늘 거기에 없었다. 나 여기 있는데. 왜? 내가 포기하는 순간, 바라던 인생은 깽깽이 발로 디스코치고 나올테지. 노을에 시뻘겋게 달궈진 우리집 이층 창문이 열린다. 이제는 나도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 듣고 싶다. 

 

 

 

 

 

 

 

 

 

 


2024.10.28 15:32

나의 성공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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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기는 걸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초면에 빵빵 터트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짧게는 한달, 길게는 3년씩 걸려가며 상대와 충분히 친해졌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웃음엔진에 시동을 건다.

 

대학교 입학 후 2학기에 들어간 기독교 동아리에서도 한학기 정도는 그저 잠복했다. 나는 그저 말없이 웃기만 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겨울방학 때 선배들이 소그룹을 나누며 "천이는 수줍음이 많으니까, 활발한 태웅이랑 같은 조를 하면 좋겠다"며 인사발령(?)을 냈다.  

 

이제쯤 본색을 드러낼 때가 됐군. 생각할 쯤 겨울 수련회가 시작됐다. 밤새 철야 기도회로 눈물 콧물 빼면서 다들 기진맥진해 들어온 숙소. 내일 일정이 있어 일찍 자야한다고 선배가 불을 껐는데, 성령의 불을 받아 각성한 대학생들이 쉽게 잠들 수가 있나. 

 

나는 허공을 향해서 유머시리즈를 콩알탄처럼 툭툭 던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이라 집중력이 있었고, 모두의 귀도 열려있었다. 푸ㅋ 풋ㅋ 푸드듴. 잘 달궈진 후라이팬에 올려놓은 후랑크 소세지처럼. 시간차를 두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중에는 완전히 나의 무대가 되어 오르락 내리락, 그날의 웃음을 파도처럼 지휘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나의 데뷔무대였다.   

 

 

 

 

 

 

 

 

 

 


2024.10.26 00:15

목신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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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부터 피곤에 골아떨어져, 자고 일어나니 어리둥절한 밤 12시다. 슬리퍼 끌고 나가서 어디 카페라도 앉아 있고 싶어지는 마음.

 

요즘은 손님이 오래 앉아있지 말라며 일부러 불편한 의자로 인테리어를 한다지만, 대학시절에는 두툼한 소파가 있는 카페가 많았다. 뒤로 눕듯이 앉듯이 팔짱을 끼고 기대서는 천장의 무늬 같은 걸 바라봤는데.

 

공강시간에는 이런 곳에서 성냥갑을 가지고 놀듯, 생각을 쌓아올렸다 무너뜨렸다 하며 친구를 기다리곤 했다. 그때 마시던 구수한 향의 블루마운틴이나 헤이즐럿 같은 커피는 어쩌다 사라졌는지 모르겠네 .

 

그 중에 <목신의 오후>라는 카페가 있었다. 학교 주변의 커피값이 보통 2000원정도 할때였는데,  이곳은 3500원을 받는 고급 수제(?)커피집이었다. 카페 가운데는 당구대가 있었고 주로 연예인이 커피를 마신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총학생회가 가격에 발끈해 “캠퍼스 질서를 어지럽힌다”며 이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마치 김두환과 시라소니처럼. 참살이길 한복판에서 학생회장과 사장이 담판을 짓고는 가격이 약간 조정됐다.

 

목신의 오후. 영어로 된 프랜차이즈가 즐비한 요즘 커피전문점을 생각하면 꽤 낭만있는 이름이었는데. 그 대단한 가격 때문에. 용기내서 한번 들어가보지도 못한 그 커피숍이 이 밤에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

 

 

 

 

 

 

 

 

 


2024.10.23 10:57

소개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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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사람을 사귈지 말지. 사람을 본지 5초안에 결정된다고 한다. 눈짓, 입매, 표정, 제스츄어 등이 눈으로 입력되면 지난 30년간의 데이터, 262800시간의 경험치를 공식 삼아 머릿 속에서 계산을 하기 시작한다.

 

결과치는 복잡하지도 않다. '느낌이 온다'는 짧은 신호 하나만 온몸에 닭살로 퍼트리면 된다.

 

이 프로세스가 고작 5초만에 이뤄진다니. 대단한 CPU가 우리 몸에 장착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2024.10.23 00:15

펄이 빛나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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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지직에서 다시 시작한 주호민의 '펄이 빛나는 밤'이 반갑다. 좋은 노래와 사연 그리고 DJ의 느긋한 마음. 이 세가지만 있어도 방송은 충분히 재미있고 듣기 좋다. 

 

나는 방송을 만들때면 자꾸 뭘 가르치려고 든다. 청취자의 시간은 귀하기 때문에, 명절날 조카를 만난 것처럼 뭐라도 쥐어주고 싶은가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담백한 구성이 내가 제일 사랑하는 라디오가 되었다. 퇴근한 직장인과 대학생. 쩔어서 돌아온 위한 사람들을 위한 한밤의 '여성시대' 버전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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