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자 생각하자
새해 첫 러닝
시쓰는 루틴
내년 2월부터는 한겨례 문화센터를 다니며 시를 쓰려고 한다. 시를 스기 위해서는 김장 담그기 전에 쑤는 풀죽처럼 희멀건한 시간을 가져야하는데, 요즘처럼 바쁘고 말초적으로 사는 내가 할 수 있을까. 낮에는 싸이키 조명에 아래서 춤추다가 밤에는 붓글씨 쓰는 사람이 될수 있을까. 벌써부터 그게 걱정되고 긴장이 된다. 생각의 육개장을 종일 휘저으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영감을 기다리는 제단의 사제가 되어야 한다.
mp3
멜론도 유튜브도 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더 쫑긋하고 라디오를 들을텐데. 음반을 돈을 주고 사야하니까, 가수들의 테이프도 CD도 잘 팔릴텐데. 노래를 선별해주는 음악 평론가들도 할 일이 많아질텐데. 다 좋아지는 일인데. 누가 반대하고 있는 걸까.
세탁
빨래하려던 엄마의 잠바에서
꼬깃꼬깃 접힌 만원짜리가 나왔다.
엄마는 한때 하루를 스물네번 접어서 살았다.
불쾌한 시
가끔 난해한 시를 읽으면 불쾌하다. 시를 읽을 때, 전혀 집중하지 않고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 독자도 문제지만, 이해시키지 않으려는 작가의 태도도 문제다. 아내는 '그건 표현 예술이기 때문에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작가의 게으름과 노력 부족이라고 반박하며 실갱이를 한다.
그렇다고 시가 초등학생들이 이해할만한 평범한 문장만 나열해야 하는가. 아니다. 시는 본질적으로 오해와 깨달음. 그 간극에서 오는 희열을 주기 위해 수수께끼 같은 문장과 복잡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 오를 수 있는 클라이밍 벽이어야 한다. 어느 방향으로 생각을 힘껏 점프시키면 도착할 수 있는 위치에 문장이 박혀 있어야 한다.
아무도 모르는 개인적인 배경을 시 안에 박아놓고서 나몰라라 키득대는 시인도 있다. 이런 시는 사람들의 지력과 정신을 낭비시킨다는 점에서 무례하다. 자폐가 아니라면, 그런 생각들은 자기 일기에나 써야지. 돈을 내고 시의 세계에 입장하는 청중에게 들려주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