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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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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밭을 갔다.  훤한 이마처럼 시원하게 펼쳐져 있던 황토색 마당은, 4월쯤 갈래갈래 가르마를 타는 것 같더니만, 6월에는 자고 일어난 총각의 까치집 머리처럼 무성하게 우거졌다. 나는 토요일에 이미 감자를 수확했는데, 일이 너무 많아 일요일에도 한번 더 방문 했다. 이제 뻣뻣해지고 있는 상추를 잘 정리하고 드문드문 열리고 있는 방울토마토와 고추를 수확하는 일만 남았다. 

 

여름의 밭은 중년들의 모습같다. 각자 분주하게 뻗어 나가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 생각을 알 수가 없다. 각자 나름대로의 열매를 수확하고, 누군가는 시기를 놓쳐 손쓰기 어려운 모습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저녁 무렵 올리브영에서 고른 마스크팩을 자기 전에 얼굴에 덮었다. 어제, 오늘, 밭 일을 열심히 했더니 얼굴이 촌사람 처럼 변해서 몇장 샀다. 원가 몇백원하는 이런 공산품에 무슨 대단한 성분이 있겠냐마는, 솔직히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 적어도 2천원 어치는 잘 생겨지겠지. 세련되지겠지. 

 

 

 

 

 

 


2024.06.27 11:10

말의 힘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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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했다. 내가 MBC에 입사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늘 휘둥그레 했고, 일종의 드라마 같다면서 감탄했는데, 어제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내가 먼저 멈추고 싶은 생각이 들어 급하게 마무리 지어버렸다. 말하면서도 지루하다는 생각. 기억이 희미해 내용이 달라진걸까. 아니면 이야기 하는 내 에너지나 기대감 흥분감 같은 것이 떨어진 걸까. 

 

서울로 돌아왔다. 까미노에서처럼 단순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정말 단순하게 마루에 밥과 반찬을 펼쳐놓고 유튜브를 또 가만히 봤다.  문제는 도파민 중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휴대폰을 보고 싶어하는 강박증 같은 것을 끊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요즘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책의 제목이 반복해서 떠오른다. SNS를 통해 모든 것을 중계하는 세대. 좋아요를 더 많이 받는 매커니즘을 아는 세대. 실체가 무엇든 간에, 진실과 간격이 있을지라도, 이 게임에서 높은 스코어를 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승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세대. 

 

 

 

 

  


2024.06.27 10:08

시차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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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적응을 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밤2시가 되어 불을 끄고 누웠는데 오늘 잘못했던 일만 자꾸 생각났다. 내 휴가기간 동안 수고했던 애들을 좀 더 치하해줄걸. 감정도 못 느끼는 어린애처럼 업무 관련 이야기만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왜 그랬을까. 

 

불을 켜고 마루에 나와 이동진 선배가 추천한 김기태 단편집을 읽었다. 스페인에 있을 때 내내 궁금했던 소설이었는데. 가슴을 망치로 탕탕 두드리는 정도는 아니었고, 잠깐 노크하는 수준에 그쳤다. 요즘 세상에 대한 스케치인건 알겠는데 이런 이야기는 왜 쓰는걸까. 단편 하나를 읽는데 그냥 한시간이 걸렸다. 

 

내일은 일본어 학원을 알아보고 여름 성수기 콘도도 신청해 봐야겠다. 다시 또 바빠질 예정이다. 그나마 일기를 이어써서 다행이다. 

 

 

 

 

 

 

 

 

 

 

 

 

 

 

 

 

 

 

 

 

 

 

 

 

 

 

 

 

 

 

 

 


2024.06.23 06:35

2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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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도착. 이로써 공식적인 한달간의 여정이 끝났다. 순례길이 진정 인생의 축소판이라면 나는 노력했고 참았고 아둥바둥했고 유치했지만 가끔은 용감했던 삶을 보냈다.

순례 2회차인 나는 처음부터 알고있었다. 콤포스텔라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다들 ‘은하철도 999‘에 탑승한 손님들처럼 시작했다. 어려운 여정을 극복해 가면, 성야고보 성당에 영원한 생명과 축복이 있으리라. 그렇게 믿으며 전진했다.

허전해. 아무것도 없는 성당에 허허로운 웃음을 보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광장 기둥에 기대어 하늘만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한국에 있는 누군가기게 자랑하려는 듯, 과장된 웃음과 환호를 카메라에 담아 돌아가는 ‘가짜의 삶’도 보였다.

사실 하늘이 우리에게 준 선물은 그 길위에 있었다. 걸을때마다 쩌릿한 물집과 퉁퉁부은 발목. 이것들을 조여매며 겪은 인내와 외로움, 평안 그리고 단순한 삶. 자체가 800km를 걸으며 우리가 매일매일 받은 일당이었다.

고항에 돌아가면 또 하루하루 걸어가야한다. 사무실을 생각하면 나도 벌써 아득하다. 이제 다시 지하철에서 사무실에서 집안에서. 걷고 뛰고 굴러야한다. 그러다보면 우리의 진짜 순례도 끝이 날 것이다. 그게 진짜 까미노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원 섭섭한 나의 2번째 까미노.
그래. 이제 떠날게.
안녕. 콤포스텔라.

 

 

 

 


2024.06.23 06:30

2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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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종착지를 10km 앞두고 우리는 진지를 펼쳤다. 산티아고 공항 옆에는 10여명의 힌국 사람이 내일 아침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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