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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0 04:49

25-2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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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6일차

며칠째 비가 내려 고되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이제 순례길이 슬슬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탁트인 풍경도 거의 보이지 않고 나무로 어둑한 숲속 길을 걷다가 눈을 들어보면 오늘의 알베르게에 도달해있다.

 

나는 2회차 순례이기에 예전에 들렸던 장소들도 새록새록하다. 혼자 앉아서 생각했던 곳. 쓸쓸히 앉아 식사 했던 곳, 5년전에도 참 외로웠구나. 그 때의 감정선이 고스란히  타고 들어올 때면, 나를 격려해 주고 싶은 마음. 나와 친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틀 남았다. 내일은 일행과 떨어져 다시 혼자 걷기로 했다. 이제는 순례길보다 순례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도착하는 날과 그 다음날. 그 주의 회사일정에 대해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매몰되지 않고 잘 살수 있읕까. 우리 인생에 끝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중심을 잡을수 있을까

 

 

 

 

 

 

 

 


2024.06.17 21:35

23-“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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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차- 24일차.

일주일 정도의 일정으로 순례길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사리아를 출발점으로 한다. 확실히 이제 도시의 풍경이 시작됐다. 그 옛날 평원을 건너 오는 적을 막기위해 지었던 두꺼운 벽돌집들은 사라지고. 채광 좋게 넓은 창이 눈에 띈다. 자신감 있는 요즘 세대의 표정 같다. 

 

새로운 사람들도 유입되고 있다. 보송보송한 얼굴에 나이키 스포츠용품으로 치장한 가벼운 걸음들. 확실히 이제 순례길을 시작한 사람들 티가 난다.  반면 생장에서 출발해 이미 700km를 걸어온 사람들은 지친기색이 역력하다. 초반의 활기찬 인사는 없어지고 지나가도 기벼운 목례로 대신한다. 

 

누군가는 이곳 800km 순례길을 80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초반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만 해도 10대처럼 이 사회에 어찌 적응할까 막막해 하다가. 2-3주 차가 되면 요령이 생겨 하루 40km씩 주파하기도 하고. 어느새 이제 100km 앞, 이 여행을 정리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얼마 안남았네. 다들 아쉬움반 두려움반으로 회한을 나누는 모습이 70대의 노인의 표정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나흘 남짓. 이 순례길을 어떻게 마무리 해야 아쉬움이 없을까. 

 

 

 

 

 

 

 

 

 

 

 

 

 

 

 

 

 

 

 

 

 


2024.06.15 21:50

2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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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차.

 

토요일 오후 2시가 되면 다음주 월요일까지 모든 수퍼마켓이 문을 닫는 작은 마을. 오늘의 정착지다. 교회도 닫고 빵집도 문을 닫았다. 알베르게 앞의 버드나무만 치마 깃을 나부끼는 조용한 동네다.

 

아무도 바쁘지 않은 순간. 아무도 찾지 않는 숙소. 아무 약속도 없는 토요일이라는 것이 대체 얼마만인가. 좀 씻고 누워야 하는데 눈꺼풀이 사르르 감긴다.

 

 

 

 

 


2024.06.15 00:52

2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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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차

나는 이 길을 걷는게 너무 괴롭고 외롭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것 같은 외로움. 대체 왜 나는 여기에 다시 왔을까 한심하기만 했다. 아는 누나가 '나이가 드니까 이래저래 선택권이 많아져서 괴로운 것'이라고 꼬집어줬는데, 내 우스룬 꼴을 제대로 설명한 한마디였다. 실제로 젊고 어린 친구들은 선택지가 적었고, 덕분에(?) 이곳의 단순한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같았다.

 

같이 길을 걷는 호현이는 시간이 갈수록 남은 거리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처음 피레네 산맥으로 돌아가 800km를 다시 걸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 가난한 마음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2024.06.12 02:03

1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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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차.

오늘도 어쩌다보니 37Km를 달려왔다. 이 동네 일베르게에 김치와 라면 그리고 밥을 준다는 이야기에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달려왔다. 다 버리고 내려놓고 생각하겠다는 사람이 뭐 그리 먹고 싶은게 많는지. 한국 음식이라면 게걸스럽게 덤비는 내가 부끄럽다.

 

오늘은 음악도 유튜브도 듣지않고 그냥 그대로 이곳을 느끼자는 마음으로 걸었는데 한국에서 연락이 많이왔다. 구구절절 다들 바쁘게 사는 서울. 사연도 복잡하고 풀기도 어려운 이아기들이었다. 다시 돌아가면 어떤 일들을 쳐내고 어떤 일에 집중해야 할까. 이 미로 속에 매몰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됐다.

 

 

그러면서도 벌써, 읽고 싶은 책 4권을 집으로 배송시켜놨다. 이곳에서 제일 그리워지는 한국의 일상은 첫째로 한식. 둘째로 헬스. 셋째로는 배깔고 누워서 책을 읽는 것. 

 

이곳에서 무얼할지 모르겠는 진공의 시간을 보낼 때, 특히 책 생각이 많이 난다. 한국에서는 책을 고를 때도 바빴다. 금방 적용할 수 있는 분야만을 선택했는데, 이제는 그냥 그대로의 책.  문학작품도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든다.  

 

가난한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판단하지 않고 넓게 받아들여줄 수 있는 가난한 마음. 단서가 될만한 생각이 아지랑이처럼 떠올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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