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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7 19:53

적의적은 아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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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사장을 보는 두가지 시선.

아시겠지만, 최근 MBC는 뒤죽박죽입니다. 예상치 못한 김재철 사장의 돌발행동, 그리고 그 카드를 수용한 노조. 반대냐, 찬성이냐. 의견은 제각기 분분하고 그야말로 피아식별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1. MBC가 맞서고 있는 두개의 집단.
MBC에는 지금 분명한 적으로 판단되는 두 집단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방문진이지요. 사실 방문진은 80년대 방송민주화 투쟁의 결과로서, 정부로부터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완충장치로 만들어 놓은 집단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 들어오면서 MBC를 조종 하기 위해 본토에서 파견한 일종의 조선총독부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집단. 공정노조라 불리는 집단입니다. 일명 선임자노조라 불리우는 이 집단은 MBC의 민주적 역사를 부인하는 암적존재, 혹은 노망든 선배 집단이라 불리울만 합니다. 대부분 주류에서 탈락한 부장급 이상 고참들로 이뤄진 이 집단은 자기 밥그릇 찾아먹기가 지상과제입니다. MBC의 미래따위는 고민하지 않은채, 퇴직전에 주식이라도 받아먹으려는지 "얼른 민영화 시키라"는 주장따위를 일삼고 있습니다. 또 공정노조의 몇몇 간부들은 퇴직후 한나라당에 빌붙기 위해서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으며, PD수첩에 대해 사과를 한답시고 넙죽넙죽 고개를 숙이지 않나, 지난 수년간의 방송 역사는 좌편향적인 부끄러운 역사였노라고 기자회견을 하지않나, 얼토당토 않은 성명서를 조중동에 뿌리고 다닙니다.

또한 회사의 여러가지 계약에 대해서 의혹을 가지고 리베이트가 있는 것이 아니냐며, MBC가 마치 부패한 집단인양 공격하고 다니는데, 대부분 분명한 근거가 없어 관련부서로부터 오히려 역공을 당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야 나쁠 것 없지 않냐 싶으면서도, 이거참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주변에서 뵙는 공정노조원들이야 말로 외주사 등 여러곳에서 돈을 받아먹다가 주류에서 밀린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든요. 뭐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보나마나 리베이트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이리저리 흠집내기용으로 찔러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 사이에 위치한 김재철 사장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김사장은 방문진의 추천을 받아왔으니, 낙하산으로 불리우는 것도 당연하고 MBC를 점령하기 위한 악의 축으로 바라보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우파의 색을 완연히 띈 그의 출신성분(?) 때문에 공정노조 측도 처음에는 김재철 사장을 쌍수 들고 환영했고, 심지어 사장 취임을 반대하며 출근을 저지하는 후배들에게 엄정한 처단을 내려야한다며 성명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2. 적의적은 아군인가요?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묘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결과적으로 새로 취임한 김재철 사장이 이 두 집단에 등을 돌린 형국입니다. 물론 이들의 노골적인 공격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고민이 생깁니다. 사회주의 전술에서 흔히 이야기하듯이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바라보면 될까요?

매일 아침 100여명의 후배들이 건물 앞에서 저지하는 바람에 김재철 사장은 그동안 사장실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이싸움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후배들은 당번을 정해 조기출근하며, 아침마다 구호를 외치고 사장의 출입을 막는 열심을 보였죠.

초반에는 김재철사장이 경찰을 대동하고 물리력을 사용해 들어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됐다면, 내부구성원들의 단결력은 한층 강해질 것이고 MBC를 지지하는 시민사회 단체의 힘도 강력하게 결집될 것입니다. 파업의 불은 한층 격렬하게 타오를 것이고, 아마도 YTN이나 KBS처럼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김재철 사장은 KBS와 YTN과 다르게 강경론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대치하고 있던 목요일, 김재철 사장은 "사장실에 올라가 조합장과 30분간 독대하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그동안 MBC노동조합은 협상의 최소 전제조건으로 엄기영 사장 사퇴의 근원이 된 "윤혁, 황희만 두 낙하산 이사의 해임"을 내걸었습니다. 사장으로서도 받아들이기 쉬운 조건은 아니었을 겁니다. 사실상 자신의 인선을 지지해준 두 집단의 권한을 정면에서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조합위원장과의 독대후 김재철 사장은 이 뜨거운 카드를 받아들였습니다. 황희만, 윤혁을 자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정문 앞에서 "MBC의 독립성을 어떻게 지키는지 보여주겠다"라고 소리치던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는 실제로 오후3시 방문진 사무실에 가서 이 두 이사의 퇴임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사무실 밖에 있던 기자들도 들었다고 합니다. 방문진과 김재철 사장간에  고성이 오가며, 큰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뉴스에서는 "방문진이 더이상 김재철 사장을 신임하지 못하겠다"는 쪽으로 돌아섰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김사장은 "이사 퇴임 문제를 해결하지 않기 전에는 내 발로 사장실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남자다운(?) 이야기도 남겼습니다.  그리고 "새로 뽑게되는 본부장은 MBC 전체 구성원의 투표를 통해서 결정하겠다"라는 한차원 민주적인 제안까지 내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꽤 끌리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선임자 노조는 갑자기 김재철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임자 노조 출신의 윤혁본부장을 내치자, 이들은 조변석개하며 김재철 사장을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당연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동안 적이라고 생각했던 두 집단이 김사장에게 반기를 들자, "그렇다면 김재철 사장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제로 MBC 선배인 김재철 사장이 방문진과 정권에 맞서서 MBC의 독립성을 지켜내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가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3. 노조위원장의 변절인가요?
외부에서는 MBC 너마저 넘어갔다며 한탄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노조측의 변절이라는 시선도 있습니다.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조 집행부가 뭔가 다른 이득을 획책하기 위해 적절히 타협한 것일까요?  

제가 알고 있기로, MBC노조위원장은 기득권이 생길만한 자리가 아닙니다. 대학때 총학생회장 처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이는 자리가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동아리 대표선출 방식과 흡사합니다. 신입생들이 2-3학년이 되면, 어쩔수 없이 같은 학번끼리 동아리 임원진을 꾸려 가고, 그 중에 대표가 가장 많이 고생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명예는 있지만 뭐, 실질적인 권력이 없는 그런 자리죠. MBC 노동조합도 사번으로 물려줍니다. 올해는 00사번이 할차례라고 하면,  결국은 끝까지 술자리에 남아 선배들의 설득을 받는 사람이 위원장이 되곤 합니다. 사실상 일종의 가시면류관, 형극의 길이죠.

지금 이근행 위원장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뭐랄까. 그는 정말 그냥 아는 집사님이 위원장 자리에 서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될 정도로 순박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시교국 선배들도, "착한 애가 저 자리가서 고생한다"고들 합니다. 이런 성향탓인지 사실, 치밀한 정치력을 구사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데 이부분은 자주 '노조의 무능력'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제 느낌으로 위원장은 동료들의 희생을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자신과 집행부의 구속, 수감 같은 것은 이미 각오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일반 조합원들이 다치거나, 계속되는 파업으로 인해 희생해야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필요이상으로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MBC는 두차례 파업을 거치며 직원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주요한 사항이 생길때는 언제나 "이 일은 집행부에서 담당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지요.

어쨌거나 김재철 사장과 적절한 협상(?)이 진행된 것은, 사실, 조합원들의 희생을 막고 싶은 이근행위원장의 착한 염려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자꾸만 사세가 기울고 있는 회사를 돌아가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결코 야합이라는 은밀한 거래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겁니다.






4. 매력적인 김사장  
사실상 엄기영 사장의 우유부단함에 MBC 구성원은 그동안 지쳐있었습니다. 엄사장은 취임 이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며 구성원들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못했습니다. 늘 상황만을 주시하고 있었고, 책임을 지려는 태도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렇게 되니 윗사람들의 눈치보기도 점점 늘어나고, 그냥 자리보전만 하려하는 무책임한 문화도 회사 안에 늘어가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회사에는 혼란이 가득했습니다. 회사는 2차례나 파업을 했고, 광고중단 압력 등을 지시하며 정치권은 회사를 압박해왔습니다. 하지만 엄사장은 독립적으로 회사를 지켜내려는 의지를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PD수첩 사과안도 넙죽 받아들이고 어영부영 정부의 입김에 휩쓸려가는가 싶더니, 결국 인사권 마저 침해 당한 뒤에야 무책임하게 회사를 빠져나갔습니다. 6월 지방선거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문만을 남긴채 말입니다. 엄사장은 사실 한번 꽥소리도 한번 내지 못하고, 정부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채 그렇게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난 뒤, 김재철 사장이 보여준 카리스마는 사람들을 매혹시킬만해 보였습니다. 따박따박 논리정연하게 위원장과 대담하던 그의 모습은, 확실히 달라보였습니다. 남자답게 승부수를 던질줄도 알고, 방문진과 고성을 내며 싸울줄도 알았습니다.

회사를 다시 좀 일으켜 주지 않을까? 엄사장 하에 있던 작년, 월급이 깎이고 각종 복지제도가 감축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구성원들은 방송환경이 예전같지 않다는 위기감을 분명히 느낀 것 같습니다. 동계올림픽 중계에서도 밀린 MBC, 앞으로는 월드컵 중계도 있고, 6월이후에는 종편채널도 등장하는 복잡한 방송환경. 김사장은 제대로 회사를 이끌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김사장의 성향 때문에 아무래도 방송민주화를 걱정하긴 합니다. 그러나 한켠에서는 사람들이 그대로인데, 사실 MBC가 달라진다 해도 얼마나 달라질까라는 안이한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김사장이 지난 2년간 척을 진 정부와도 적절히 타협하며, MBC의 경쟁력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이 되어줄수 있지는 않을까요. 어쩌면 김재철 카드는 MBC 회생의 묘안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5. 그런데 지금 상황. 예전과 너무 비슷하다.
요즘은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엄기영 사장의 재임시기를 생각하면 너무 혼란스러웠던 피곤했던 기억만 납니다. 차라리 김재철 사장이 와서 카리스마 있는 경영방식으로 회사를 좀 정리하고 질서를 잡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경영방식의 합리화를 통해, MBC의 경쟁력을 되살렸으면 좋겠다. 대대적인 연말 보너스는 받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월급이 깎이는 일은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동안 정부와 싸우느라 너무 피곤했다. 이명박과 확실한 연줄이 닿아있다고 하면, 적어도 기업의 광고중단 같은 압박은 들어오지 않겠느냐. 설령 그가 약간 우파라 할지라도 어떠냐. 그동안 민주주의를 지켜온 MBC 구성원들의 저력이 있는데, 취임한다고 해서 회사가 얼마나 바뀌겠느냐. 이런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저는 섬짓해지더군요. 지금 제 마음 에서 돌아가는 이 심리적 형국. 국민들이 이명박을 뽑을 때의 마음과 무척 흡사한 것 같아서요.

너무나 혼란스러웠던 노무현 정부. 차라리 추진력 있는 사나이 이명박이 앞장서 뭔가 발전된 모습으로 변모시켜주었으면 좋겠다. 과거의 행적을 봤을 때, 무엇보다 경제를 발전시킬 것은 분명하지 않느냐. BBK 등 다소 흠결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미 한층 성숙해있는 민주주의 토양에서 그가 집권한다고 세상이 얼마나 변하겠느냐는 의구심 같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안심과 기대와는 달리, 그가 집권하고 난 2년간 민주주의는 무지막지한 속도로 역주행했습니다. 80년대로 회귀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습니다. 용산참사, 매주월요일 대국민 방송, 미 소고기 수입, 언론 탄압. 억울하고 말도 안되는 일들이 거듭거듭 발생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운 정치경제의 모습에 촛불로 저항하는가 싶더니, 결국 중년들은 그저 맘편한 걸그룹에 위로 받는 것으로 낙을 삼고 있습니다.

김재철 사장이 만들어갈 MBC의 미래는 어떨까요? 우리는 그가 이명박과 긴밀한 사이라는 큰 줄기를 너무 쉽게 묵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장 프레젠테이션에서 PD수첩을 진상조사하겠다고 공언했던 그의 말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앞으로 몇 달 사이 MBC는 순식간에 80년대로 회귀하며, 국민들에게 또다른 패배감을 안겨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윤혁, 황희만과 같은 여우를 몰아내고 김재철이라는 호랑이를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듭니다.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MBC는 어떻게 변할까요. 저는 지금 답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이글은 MBC PD로서의 외부에 밝히는 공적 입장이 아니라, 한 직장인으로서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입니다. 인용, 게재, 복사를 금합니다.









  • 천이형님 2010.03.09 17:58
    그래.
    한 이틀만에 상황은 분명해지고 있다.
    김재철은 이명박과 별반 다르지 않게
    품질하자로 판명된 간부들을
    자회사 곳곳에 쑤셔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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