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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6 06:24

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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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나 한번 먹자고 해서 교회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급하게 만나서 급하게 굽고 급하게 떠들고 헤어졌다. 이야기는 정미소의 쌀알처럼 계속 부어졌지만, 다들 상대의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결론을 내린다. 경매하는 수산시장 같았고, 계산기를 두드려 가격을 보여주는 용산의 장사치들 같았다. 

 

나이 들어서는 쓸데 없는 말을 많이 해야한다고 한다. 나도 뭘 얻으려고 만난 것은 아니다. 나는 솔로에 성형이야기에, 연예인, 고양이 이야기까지. 물을 한 웅큼 쥐어본 느낌이다. 대화는 남는 것 하나 없이 다 빠져나갔다. 최근의 드라마는 줄줄 꿰고 있지만, 다들 마지막으로 책을 읽어본 게 언제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3년이 지났는데, 그 때의 갈림길에서 우린 각자 너무 많이 뻗어온 것 같다. 헛헛할 수밖에 없는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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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에서 농담을 잘 안하게 된다. 온통 진지한 이야기 뿐이다. 사실 유머를 하기 전 나는 준비작업이 필요한 편이다. 농담이란 짖궃은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와 나 사이에 신뢰관계가 충분히 쌓였을 때 시작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밭을 일구는데 몇년이 걸리기도 한다. 

 

MBC는 농담이 판을 치는 곳이다. 2010년대쯤에 6개월이나 지속된 심각한 파업상황에서, 엄중한 전체 총회를 하는데도 그 사이 사이마다 우스개를 던지고 싶어하던 사람들. 그저 농담 한번 치고 싶어서 반짝반짝하던 직원들의 눈을 기억한다. 


그런 유머의 격투장 속에서 살았으니 나도 얼마나 끼고 싶었을까. 하지만 내가 스스럼 없이 유머를 던지기 시작한 건 2년 정도가 지나서다. 상대가 편하게 들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아마 경력사원으로 들어온 내 자격지심과 경계심 때문일 거다. 

 

인스타그램에 유머가 적어진 것이 보인다. 예전만큼 웃기지 못해 아쉬운 것이 아니다. 그만큼 믿고 말할 만한 사람, 믿고 의지할 사람이 적어진 신호일거다. 한 때는 늘 사람들이 찾아오던 나였는데 절간처럼 조용하다. 


나이 50도 안됐는데, 퇴직도 안했는데 벌써 고독하다. 이 농담같은 현실이 제일 농담같다. 지금의 상황이 나에겐 제일 큰 유머다. 

 

 

 

 

 

 

 

 


2023.06.20 05:56

2023년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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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 생각에는 

47세나 48세나 다 아저씨일 뿐이지만, 

47살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2023.06.20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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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 사용할 가짜 문자를 만들기 위해, 요즘 제일 많이 뒤적거리는 건 이 홈페이지이다, 2000년부터 이곳에 썼다 방치했다를 반복했으니 그래도 23년의 기록이 뜨문뜨문 적혀있는 셈. 하지만 예전 글들을 보면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때는 사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승전결도 없이 감정의 파편들을 사방에흩뿌리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추리해 봐라, 내 복잡한 마음을. 아주 건방진 놈이었다  

 

성장하고, 복사하고, 분열하고, 사멸하고. 우리 몸의 세포는 1년 정도면 거의 교체되기 때문에 1년전의 나는 이 몸안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하물며 23년 전의 나라니. 완전 남인 셈이다. 


남이 쓴 그 글을 지금 읽어보면 온통 개꿈 같은 이야기이고, 뭐라 해몽을 붙여야할지도 모르겠다. 읽는 사람이 과자 부스러기 같이 엉망으로 흩어진 말을 추리해야하는데 이제 누가 내게 그런 관심을 갖겠는가. 쓰레받기와 빗자루로 쓱쓱  쓸어담아 쓰레기통에 처박혀야 될 수준이다. 

 

요즘은 아침방송 때문인지 11시쯤 잠들어서 5시쯤 깬다. 이 새벽 시간엔 집중력도 좋고 방해하는 사람도 없어서 뭘 좀 읽고, 쓰려고 하는 편이다.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일기처럼 평이하고 알아먹게 쓰는게 좋다. 좀 웃긴 소리지만, 50이 다 되어서야 삶을 어떻게 '받아쓰기' 해야하는지 깨달은 것 같다. 

 

 

 

 

 

 


2023.06.18 05:01

소백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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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갔던 소백산 산행. 안내 산악회 버스에선 원래 대화 금지인데, 뒷자리에서 계속 말을 이어가던 아저씨부터가 문제였다. 중반에 산악대장이 와서 주의를 줬지만 그 때뿐. 말을 안하면 큰일 나는 병에 걸린건지 계속 대화를 쫑알쫑알 하는데 스트레스가 쌓였다.  "치이익~" 앞문이 열리는 증기 소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다듬고 출발하려는 순간. 아뿔싸. 휴대폰을 차에 놓고 온 걸 깨달았다. 물어물어 인솔자의 위치를 찾았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버스는 이미 우체국 주차장까지 내려갔고, 유일한 대중교통인 시골버스는 2시간에 한번씩 온다고 하니, 별 도리가 없었다. 그저 전화기를 빌려 집에다 "차가 돌아오는 4시 30분까지는 통화가 안되어도 걱정하지 마라"는 메시지만을 남기고, 쿨한척 산행을 이어갔다. 

 

전화기는 사진기이자, 통신수단이자, 지도이자, 정보이자, 외로움을 벗어나게 해주는 친구였다. 오가는 산행객들이 있었지만 갑자기 혼자 원시의 세계로 툭! 떨어졌다.


딱히 챙길 사람도 없는 나홀로 산행에서는 아무래도 피치를 올리게 된다. 그래도 이렇게 사람이 없을리가 없는데… 앞에 있는 등산객을 40분 정도 지나서 만났다. "비로봉이요? 이쪽으로 가는 게 아닌데...국망봉으로 가는 코스에요" !!! 버스에서 인솔대장이 "걸음이 빠르지 않은 사람은 국망봉으로 가지말라. 버스를 놓칠수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냥 밀고 갈까. 하지만 내 실력으로 제시간에 도착할 지 알수도 없었고, GPS가 장착된 휴대폰이 없으니 페이스를 조절할 방법도 없었다. 

 

서둘러 원점 회귀를 해야한다. 온 몸을 휘감는 낭패감. 남들보다 1시간 이상 뒤쳐지는데 이걸 따라 잡을 수 있을까. 나는 바람처럼(?) 달렸다. 바위가 울퉁불퉁한 내리막 길을 뛰니 체중이 실리는 엄지발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신발엔 작은 돌도 몇개 들어가 고문기술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걸 챙길 시간이 없었다. 늦지 않아야한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으려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물었다. "비로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여기서 몇분 거리일까요?"   

 

간신히 원점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올라갈 때도 쉬지 않았다. 버스를 같이 타고 온 산악회 사람을 보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지 않는 걸로 원칙을 정했다. 하지만 산길을 이미 1시간 정도 달린 후였고, 더군다나 혼자 긴장하며 달렸기 때문에 호흡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벌써부터 다리가 흔들리는 걸보니 체력은 이미 털렸구만. 휴대폰이 없었기에 이 상황을 나눌 수도 없었다. 작은 기계의 분실일 뿐이었는데, 완전한 문명과 단절. 고립감. 이번 산행은 정말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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