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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6 11:44

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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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나도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2023.11.19 06:44

방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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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에 나왔던 방시혁. 슬라임 같이 생긴 친구가 갑자기 '사람이 논리로 설득될 수 있나요?'라는 심퉁한 말을 건냈을 때, 나의 베프가 됐다. 소름이 짜르르 끼쳤고 마음이 뭉클했다.  젊은 시절 오랫동안 고민했던 주제를 알아주는 사람이 나왔다는 반가움 같은거였다.

 

사실 박진영은 20대의 나와 비슷했다. "누군가를 잘 설득하면 되고 잘 설명하면 세상은 바뀔것!"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는 연대의 교훈이 내 좌우명이었다. 

 

지덕복 합일설. 제대로 알고 설득하면 된다. 나는 완벽한 종교적 변증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의 신학론을 더 정교하게 갈고 닦아 이 타락한 세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누구도 이기지 못할 종교적 논리의 필승법을 가지고만 있다면 기독교의 국가, 기독교의 세계도 만들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방시혁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이 느끼는 것은 저마다 다르고 완전히 독립적이어서, 한가지의 이해를 함께 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느끼는 것이 다른데 논리로 설득하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회의였다. 

 

기억나는 일이 있다. 대학시절 한시간 정도 뜨거운 논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성경의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증거를 입체적으로 들이댔다. 논리적으로는 물샐틈 없었고, 완전한 나의 승리였지만,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무신론자로 남아있었고,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날 "힘들 때면 나는 예배당에 찾아가 조용히 기도해"는 내 힘없는 고백에 , 그 친구는오히려 마음을 열었다. 설득당했다. 

 

논리란 사람을 설득하는 도구로 얼마나 무기력한가. 무가치한가를 깊숙히 경험한 나는. 더이상 예전처럼 변증법을 신봉하는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없었다.

 

 

 

 

 

 

 

 

 

 

 

   

 

 

 

 

 

 

 

 

 

 

  

 

 

 

 

 

 

 

 

 

 

 

 

  


2023.11.19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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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에게는 문장의 기술이나 표현법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왔을 때 글을 썼을 것이다. 문장력보다는 강렬한 경험이 글쓰기의  더 중요한 능력이었다."

 

라고 책을 읽으며 메모했는데, 어김없이 뒷부분에. 잘 정리된 그의 생각이 나왔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 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었을 때였다. 

 

요즘 소설은 다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걸까. 개인적 경험에 대한 장황한 도취와 배경묘사가 내용의 대부분이다. 이게 요즘 내가 소설읽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일 거다.

 

당연히 제일 먼저 하루키가 떠올랐다. 다들 그의 문장에 매료되지만, 무슨 내용이었는지 물을 때면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그의 소설은 예술이지만, 소설이라기보다 시에 가깝다. 내용보다 문장의 가락을 느끼는게 더 중요하다.

 

하긴. 가사가 들리지 않는 음악을 좋아하는 시대니까. 잘 팔리는 것이 아주 이상하지는 않다. 

 

 

 

 

 

 

 

 

 

 

 

 

 

 

 

 

 

 


2023.11.19 05:48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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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도 자기를 숨기고 필명을 쓰는 작가기 있을까. 네이버 연재 게시판에 포르노 소설을 쓰는 작가 말고는 숨기는 사람이 없다. 다들 자기를 드러내려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글 자체보다 글에서 얻는 유명세를 이용해 보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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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1. 순전한 이기심 - 사후에 기억되고 싶고 사람들의 이야기 거리가 되고 싶은 마음. 그런 허영심 때문이다. 

 

2. 미학적 열정 -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 글꼴이나 여백에서조차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3. 역사적 충동 - 사물을 그댈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주려는 욕구

 

4. 정치적 목적 -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남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은 욕구.

 

*알려져 있다시피 조지오웰이 가장 강조했던 글쓰기의 목적은 4번 정치적 목적이다. 조지오웰은 "10년 통틀어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은 정치적인 글쓰리글 예술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스페인 내전에 대한 르뽀 '카타로니아 찬가'를 집필한 후 이를 '동물농장'이라는 소설로 다시 표현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 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엇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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