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직장에선 일이 힘들지는 않았다. 사보파트에 들어온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비문으로 얽혀진 선배들의 원고를 붉은 펜으로 피범벅으로 만들 정도로 건방졌다. 거침이 없었다. 사람이 힘들었지 일이 힘들지는 않았다. 인정받았고,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니까 중요하지 않은 일을 미뤄놓고, 중요한 일을 땡길줄 아는 효율적인 작업을 해댔다.
새 직장에 온지 나도 삼개월이 넘었다. 아직도 내 행동엔 눈치가 뭍어있다. 위축되고, 가끔은 사무실의 걸레만큼이나 무기력하다. 오늘 회사에 잠깐 갔다가 서점에서 GQ를 샀다. 회사가 버겁고, '나는 할 줄 아는게 아무 것도 없다'는 솔직한 글이, 그러면서도 자신은 조용히 자라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위로가 됐다. 잡지를 펼쳐놓고 한자 한자 타이핑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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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에디터는 외로운 자리다. 처음 인턴으로 잡지사에 들어왔을 때 나는 걸핏하면 울었다. 한번은, 눈가에 눈물이 맺힌 정도가 아니라 주룩주룩 멈추지 않았다. 태연한 척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가, 계단을 두 층 내려가서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울었다. 크게 소리도 냈다. 우렁차게 울 것까진 없었는데...그렇게라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다. 물론 엉뚱하게 다른 층 사람들만 놀래켰지만. 하루에도 수천 번씩 혹시 바보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십오년 동안 뭘 하고 살았을까란 생각은 그보다 열 번쯤 더 많이 했을 거다. 난 잘하는 게 없었다. 그 때 바람은 빨리 3년이 지나가는 거였다. 그쯤되면 한 명의 에디터로서 사람구실을 할 수 있겠지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매일매일 그 생각을 했는데 오늘이 어제갔고 내일도 어제 같을 것 같고, 막상 내일이 되니 정말 어제 같았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 어제가 정말 어제 같지만.
지금은 후배가 두 명있다. 한 명은 남잔데 이름은 문성원이고 나이는 나랑 같다. 서먹한 사이는 아니지만 어떡하다 보니 서로 말을 잘 안 하게 됐다. 특별히 도와주거나 알려줄 게 없어서 말 걸 일이 더 없다. 성원인, 일을 잘 한다. 입사한 지 몇 개월 안 됐지만 눈부신 걸 꽤 했다. 한 번은 마감중이었는데, 성원이 등 위로 검은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그는 모니터 속으로 빠져 들어갈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얼굴이 붉었다. 성원이도 그때 내가 울었던 것처럼 혼자서 아플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뭐든 도와주고 싶었는데 못 그랬다. 또 한 명의 후배는 여자고 이름은 손기은이고 기특하게도 나보다 어리다. 어젠 오후 햇살이 참 좋아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회사 앞 의자에 앉아 함께 놀았다. 무슨 얘기를 하다 그랬는진 모르겠는데 기은인 왼손바닥에 머리를 올려두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선배 나는 할 줄 아는게 아무 것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공원의 나무는 날이 갈수록 녹색이 되는데, 3년이 자나도록 나는 뭐가 달라졌을까? 도와주고 싶었는데, 처지가 비슷했다.
지난 달로 3년을 다 채웠다. GQ에 들어온 진 1년이 넘었다. 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GQ를 지큐적으로 만드는 게 누군진 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나도 한 명의 충실한 독자였으니까. 지금 이 두 명의 후배들에게 이전 내 모든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좋은 선배일까? 그들은 나에게 자랑할만한 그들 자신을 주었는데...
나는 아직도 GQ가 버겁다. 일을 하다 밖으로 종종 바람을 쐬러 나가면 한 그루 나무처럼 거기서 종일 서 있고 싶단 생각도 한다. 그러나 비가 오면 황급히 건물 속으로 뛰어 들어와야 한다. 내가 없으면 사무실이 지나치게 고요해져 모두두르 우울 증세에 시달리게 될 거란 것도. 아. 그리고 내가 없으면 작가들 인터뷰를 다른 에디터가 해야 한다. 스포츠 기사 외고는 또 누가 맡길까? 섹스 기사는 누가 쓰고? 내가 없으면 편집장과 선배들은 누굴 혼낼까? 내가 없으면 내 책상을 누가 어지럽히지? 내가 없으면, 가끔 진심 어린 엽서로 내 기사를 칭찬해주던 극소수의 GQ독자들은 얼마나 심심해질까?
나무가 자라는 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의 고요들도 어딘가에서 다 하는 일이 있겠지? 아. 그렇게 우리 모두들, 사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거면 좋겠는데. 다시 오늘을 돌아볼 먼 훗날엔 나도 좀 무성해지면 좋겠는데.
새 직장에 온지 나도 삼개월이 넘었다. 아직도 내 행동엔 눈치가 뭍어있다. 위축되고, 가끔은 사무실의 걸레만큼이나 무기력하다. 오늘 회사에 잠깐 갔다가 서점에서 GQ를 샀다. 회사가 버겁고, '나는 할 줄 아는게 아무 것도 없다'는 솔직한 글이, 그러면서도 자신은 조용히 자라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위로가 됐다. 잡지를 펼쳐놓고 한자 한자 타이핑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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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에디터는 외로운 자리다. 처음 인턴으로 잡지사에 들어왔을 때 나는 걸핏하면 울었다. 한번은, 눈가에 눈물이 맺힌 정도가 아니라 주룩주룩 멈추지 않았다. 태연한 척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가, 계단을 두 층 내려가서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울었다. 크게 소리도 냈다. 우렁차게 울 것까진 없었는데...그렇게라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다. 물론 엉뚱하게 다른 층 사람들만 놀래켰지만. 하루에도 수천 번씩 혹시 바보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십오년 동안 뭘 하고 살았을까란 생각은 그보다 열 번쯤 더 많이 했을 거다. 난 잘하는 게 없었다. 그 때 바람은 빨리 3년이 지나가는 거였다. 그쯤되면 한 명의 에디터로서 사람구실을 할 수 있겠지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매일매일 그 생각을 했는데 오늘이 어제갔고 내일도 어제 같을 것 같고, 막상 내일이 되니 정말 어제 같았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 어제가 정말 어제 같지만.
지금은 후배가 두 명있다. 한 명은 남잔데 이름은 문성원이고 나이는 나랑 같다. 서먹한 사이는 아니지만 어떡하다 보니 서로 말을 잘 안 하게 됐다. 특별히 도와주거나 알려줄 게 없어서 말 걸 일이 더 없다. 성원인, 일을 잘 한다. 입사한 지 몇 개월 안 됐지만 눈부신 걸 꽤 했다. 한 번은 마감중이었는데, 성원이 등 위로 검은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그는 모니터 속으로 빠져 들어갈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얼굴이 붉었다. 성원이도 그때 내가 울었던 것처럼 혼자서 아플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뭐든 도와주고 싶었는데 못 그랬다. 또 한 명의 후배는 여자고 이름은 손기은이고 기특하게도 나보다 어리다. 어젠 오후 햇살이 참 좋아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회사 앞 의자에 앉아 함께 놀았다. 무슨 얘기를 하다 그랬는진 모르겠는데 기은인 왼손바닥에 머리를 올려두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선배 나는 할 줄 아는게 아무 것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공원의 나무는 날이 갈수록 녹색이 되는데, 3년이 자나도록 나는 뭐가 달라졌을까? 도와주고 싶었는데, 처지가 비슷했다.
지난 달로 3년을 다 채웠다. GQ에 들어온 진 1년이 넘었다. 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GQ를 지큐적으로 만드는 게 누군진 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나도 한 명의 충실한 독자였으니까. 지금 이 두 명의 후배들에게 이전 내 모든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좋은 선배일까? 그들은 나에게 자랑할만한 그들 자신을 주었는데...
나는 아직도 GQ가 버겁다. 일을 하다 밖으로 종종 바람을 쐬러 나가면 한 그루 나무처럼 거기서 종일 서 있고 싶단 생각도 한다. 그러나 비가 오면 황급히 건물 속으로 뛰어 들어와야 한다. 내가 없으면 사무실이 지나치게 고요해져 모두두르 우울 증세에 시달리게 될 거란 것도. 아. 그리고 내가 없으면 작가들 인터뷰를 다른 에디터가 해야 한다. 스포츠 기사 외고는 또 누가 맡길까? 섹스 기사는 누가 쓰고? 내가 없으면 편집장과 선배들은 누굴 혼낼까? 내가 없으면 내 책상을 누가 어지럽히지? 내가 없으면, 가끔 진심 어린 엽서로 내 기사를 칭찬해주던 극소수의 GQ독자들은 얼마나 심심해질까?
나무가 자라는 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의 고요들도 어딘가에서 다 하는 일이 있겠지? 아. 그렇게 우리 모두들, 사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거면 좋겠는데. 다시 오늘을 돌아볼 먼 훗날엔 나도 좀 무성해지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