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급하게 장인어른의 수술실로 달려갔다. 원래는 앞에 수술이 3개가 더 잡혀있다고 해서 오후에나 진행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일정이 바뀐거다.
장인어른의 입원기간 동안 우리는 몸이 안좋은 장모님을 집에 모시기로 했는데, 아침내내 이것저것 챙겨 드리느라 장인어른의 전화가 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얼마나 외롭게 수술실에 들어가셨을까. 그 뻔한 서운함을 뚝뚝 흘리면서, 침대에 올라 천히 밀려가셨으리라. 아버지는 방광암보다 우리의 방관함을 더 미웠했을지 모른다.
급하게 오전 반차를 내고 운전을 했다. 거의 한번의 멈춤도 없이 미끌어지듯 병원에 도착했는데, 이래저래 5층 수술실 앞을 지키다보니 30분만에 아버지가 나오셨다. 아버지는 기름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다. 우리를 보자 출근은 안하고 왜 여기왔냐고 나무랐지만, 못난 딸과 사위가 쭐레쭐레 서있는 모습이 반가우셨는가보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면회는 채 5분도 넘지 모했다. 우리는 의사로부터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고, 간호사는 보호자를 쫓아내기에 바빴다. 수술 경과는 의사선생님이 환자 본인한테 전할테니, 그 쪽을 통해서 들으라했다.
최근 몸이 안 좋은 장모님을 모시느라 양쪽을 볼볼 겨를이 없는걸 아시고 아버지는 씩씩하게 간호통합병동을 택했다. 그야말로 효율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간인 것이 실감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