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삼성 쪽의 사태를 보면서 제일 처음 놀란 것은 기자들의 의연한 침묵이었다. 평소에 하이닉스의 허물에 대해서는 요밀조밀하게 캐내던 기자형님들이 무슨 큰일이겠냐는 듯이 잠잠했다. 갸우뚱하는 내 얼굴에도 그냥 쓴 웃음과 농담으로만 답하고 있었다. 기자 형님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일련의 사태가 마무리 되고 나면 각 매체별로 호불호의 점수가 매겨지고 이에 따라 광고 수주량이 차별화 되리라는 것을.
아주 오래 전에 우리의 얄팍한 주가부양책 보도자료에 대해 '시장 질서를 교란하면 안된다'는 의연한 대꾸를 했던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나는 이후에 이형님을 참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형님 역시 이번 뇌물 사건에 대해 큰소리는 내지 못했었고, 기사를 내더라도 기자 이름 대신 '기획 취재단'으로 쓸 수 밖에 없는 씁쓸한 속내를 내 비치기도 했다.
삼성의 mp3 신제품이 발표 될 때마다 시리즈로 가지고 있는 우리의 기자 형님들. 삼성에 비하며 소기업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하이닉스에서도 비교적 융숭한 대접을 받는 기자 형님들이 그동안 예의 바르고 호사로운 대접을 해주었을 삼성 측에 안면을 깔고, 공공연하게 여겨졌던 비자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칼을 들이대는 것은 개인으로서도 심히 민망한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김용철 변호사의 발표에 대한 삼성의 28페이지짜리 반박문도 사실은 '비자금이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김용철이 또라이이며, 이것은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라는 공격적인 이야기로 모든 초점이 맞춰진 것을 보며, 이 창 끝이 자신에게 겨눠졌을 때의 섬뜩함도 계산하고 있었을 것이다. 삼성의 협박대로 그 누구도 거리에서 쓸쓸한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나는 삼성에 다니는 친구와 후배들에게도 분위기가 어떠냐며 전화를 걸어 보았다. 직접적인 업무와 연관되지 않아서인지 다들 소란스럽고 피곤한 일이 벌어진 정도로 취급하고, 자신이 머무는 회사의 부도덕성에 대한 부끄러움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서 빨리 이 귀찮은 일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
2
순간.
내가 삼성의 홍보팀이라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도 '반도체 라인에서 백혈병이 발생한다'는 의문의 기사에 대해서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감추어버린 나. 삼성 홍보팀에 앉아서도 비슷한 성실함을 보였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디펜스 하기위해, 방대한 자료를 처리하며 야근을 도맡아 하는 우수 신입사원이었을 것이다. 현기증이 일어났다.
내가 대항할 수 있을까. 군대 못지 않은 철저한 계급사회, 컴컴한 절벽같은 이 권위 속에서 내가 태연하게 그룹의 총수에게 옳은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내가 밥을 벌어 먹는 이 자리는 금전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자유롭지도 의연할 수도 없는 나쁜 직업이 아닐까.
얼마전 이랜드 사태에 대한 심각한 토론이 학사회에서 일어났을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의 착한 후배들은 나름의 논리로 무장되었지만, 자신들을 엘리트로 대우해주는 조직에 대해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판단 자체보다도 회사의 의지에 대해 확신하는 그 모습 자체가 더 무서웠다.
개인의 윤리라기 보다는 스트럭쳐의 문제. 하루에도 수십개의 명령이 떨어지는 가운데, 조직에 속한 개인이 객관적 시아로 균형을 잡으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렇게 되기 위한 최소한의 권한을 갖는데만도 10년의 세월은 걸린다. 소돔을 개혁할 수 있을까. 고모라를 박차고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직업 자체를 고를 수 있는 결정권 정도가 아닐까.
3
나쁜 직업은 없는 것일까.
대학시절 기독단체에서 몸 담으면서 우리는 위대한 꿈을 꾸었다. 선배들은 세상을 바꿀 리더라고 이야기하였고 우리들도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당시 위대한 리더에겐 사람이 중요했고, 영어공부도 학과공부도 하찮은 것이었다. 10년만에 졸업을 할 때가 됐다. 시절은 어려워졌고 리더로 키워졌던 아이들은 초라해졌다. 그 사이에 우리에게 들려지던 이야기도 바뀌었다. 세계를 바꾸자고 이야기 하던 호탕함은 사라지고, 아무리 작은 자리라도 자기 몫은 있는거라고. 그곳에서라도 조금씩 환경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찮은 직업 같은 건 사라졌다. 나쁜 직업 같은 건 없었다.
지금 위대한 아이들은 작은 자리로 가서 열심히 하고 있다. 선배들의 말을 묵묵히 뒤로하고 시험을 준비했던 아이들의 현재에 비해 그 자리는 너무 협소했다. 하지만 그레이트한 꿈은 사라졌다 해도 그레이트한 인간이 되는 것 만큼은 포기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이곳에서라도 소영웅이 되고 싶다. 조직은 그들을 환영한다. 성실하고 충성된, 판단 능력이 있는 일꾼이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다. 경도 된다. 몰입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의 생각은 그들 자신의 생각이 되어가고 있다. 나쁜 직업이어도 상관없다. 어짜피 인생은 불완전한 것이니까.
세속적이고 부도덕한 이곳을 아름답게 바꾸고 말리라던 첫 생각은 입사원서와 함께 인사팀 데이터베이스에나 가서 잠들어 있다.
4
이제 우리는 나이가 든다. 책임을 져야할 부분은 더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책임이 가정이라는 카테고리에만 머무르지 않았으면 한다.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아직은 남아있다.
최근 삼성 쪽의 사태를 보면서 제일 처음 놀란 것은 기자들의 의연한 침묵이었다. 평소에 하이닉스의 허물에 대해서는 요밀조밀하게 캐내던 기자형님들이 무슨 큰일이겠냐는 듯이 잠잠했다. 갸우뚱하는 내 얼굴에도 그냥 쓴 웃음과 농담으로만 답하고 있었다. 기자 형님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일련의 사태가 마무리 되고 나면 각 매체별로 호불호의 점수가 매겨지고 이에 따라 광고 수주량이 차별화 되리라는 것을.
아주 오래 전에 우리의 얄팍한 주가부양책 보도자료에 대해 '시장 질서를 교란하면 안된다'는 의연한 대꾸를 했던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나는 이후에 이형님을 참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형님 역시 이번 뇌물 사건에 대해 큰소리는 내지 못했었고, 기사를 내더라도 기자 이름 대신 '기획 취재단'으로 쓸 수 밖에 없는 씁쓸한 속내를 내 비치기도 했다.
삼성의 mp3 신제품이 발표 될 때마다 시리즈로 가지고 있는 우리의 기자 형님들. 삼성에 비하며 소기업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하이닉스에서도 비교적 융숭한 대접을 받는 기자 형님들이 그동안 예의 바르고 호사로운 대접을 해주었을 삼성 측에 안면을 깔고, 공공연하게 여겨졌던 비자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칼을 들이대는 것은 개인으로서도 심히 민망한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김용철 변호사의 발표에 대한 삼성의 28페이지짜리 반박문도 사실은 '비자금이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김용철이 또라이이며, 이것은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라는 공격적인 이야기로 모든 초점이 맞춰진 것을 보며, 이 창 끝이 자신에게 겨눠졌을 때의 섬뜩함도 계산하고 있었을 것이다. 삼성의 협박대로 그 누구도 거리에서 쓸쓸한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나는 삼성에 다니는 친구와 후배들에게도 분위기가 어떠냐며 전화를 걸어 보았다. 직접적인 업무와 연관되지 않아서인지 다들 소란스럽고 피곤한 일이 벌어진 정도로 취급하고, 자신이 머무는 회사의 부도덕성에 대한 부끄러움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서 빨리 이 귀찮은 일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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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내가 삼성의 홍보팀이라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도 '반도체 라인에서 백혈병이 발생한다'는 의문의 기사에 대해서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감추어버린 나. 삼성 홍보팀에 앉아서도 비슷한 성실함을 보였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디펜스 하기위해, 방대한 자료를 처리하며 야근을 도맡아 하는 우수 신입사원이었을 것이다. 현기증이 일어났다.
내가 대항할 수 있을까. 군대 못지 않은 철저한 계급사회, 컴컴한 절벽같은 이 권위 속에서 내가 태연하게 그룹의 총수에게 옳은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내가 밥을 벌어 먹는 이 자리는 금전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자유롭지도 의연할 수도 없는 나쁜 직업이 아닐까.
얼마전 이랜드 사태에 대한 심각한 토론이 학사회에서 일어났을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의 착한 후배들은 나름의 논리로 무장되었지만, 자신들을 엘리트로 대우해주는 조직에 대해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판단 자체보다도 회사의 의지에 대해 확신하는 그 모습 자체가 더 무서웠다.
개인의 윤리라기 보다는 스트럭쳐의 문제. 하루에도 수십개의 명령이 떨어지는 가운데, 조직에 속한 개인이 객관적 시아로 균형을 잡으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렇게 되기 위한 최소한의 권한을 갖는데만도 10년의 세월은 걸린다. 소돔을 개혁할 수 있을까. 고모라를 박차고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직업 자체를 고를 수 있는 결정권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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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직업은 없는 것일까.
대학시절 기독단체에서 몸 담으면서 우리는 위대한 꿈을 꾸었다. 선배들은 세상을 바꿀 리더라고 이야기하였고 우리들도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당시 위대한 리더에겐 사람이 중요했고, 영어공부도 학과공부도 하찮은 것이었다. 10년만에 졸업을 할 때가 됐다. 시절은 어려워졌고 리더로 키워졌던 아이들은 초라해졌다. 그 사이에 우리에게 들려지던 이야기도 바뀌었다. 세계를 바꾸자고 이야기 하던 호탕함은 사라지고, 아무리 작은 자리라도 자기 몫은 있는거라고. 그곳에서라도 조금씩 환경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찮은 직업 같은 건 사라졌다. 나쁜 직업 같은 건 없었다.
지금 위대한 아이들은 작은 자리로 가서 열심히 하고 있다. 선배들의 말을 묵묵히 뒤로하고 시험을 준비했던 아이들의 현재에 비해 그 자리는 너무 협소했다. 하지만 그레이트한 꿈은 사라졌다 해도 그레이트한 인간이 되는 것 만큼은 포기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이곳에서라도 소영웅이 되고 싶다. 조직은 그들을 환영한다. 성실하고 충성된, 판단 능력이 있는 일꾼이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다. 경도 된다. 몰입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의 생각은 그들 자신의 생각이 되어가고 있다. 나쁜 직업이어도 상관없다. 어짜피 인생은 불완전한 것이니까.
세속적이고 부도덕한 이곳을 아름답게 바꾸고 말리라던 첫 생각은 입사원서와 함께 인사팀 데이터베이스에나 가서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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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나이가 든다. 책임을 져야할 부분은 더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책임이 가정이라는 카테고리에만 머무르지 않았으면 한다.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아직은 남아있다.
오빠 글을 읽으니 그 책이 생각나는군요..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이송 및 수용소 지휘를 했던..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 과정에 대한..(논픽션)
본인은 양심의 가책보다는 조직에 충성했다는 자부심만 남아 있었던..(당시엔 그것이 '적법'한 것이었다면서).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겠지요?
아무튼, 생에서의 건투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