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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S는 1940년대 전반기에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를 오가던 수송선에서 군속으로 일했던,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그는 배 밑바닥 좁은 방에 갇힌 채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서럽게 울던 20~30명쯤의 식민지 조선 처녀들을 여러 번 목격했다. 항해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는 그녀들의 모습이 너무나 측은하게 여겨졌다. 전쟁이 끝난 뒤로도 그 어두운 기억들이 떠나지 않고 맴돌곤 했다. 나이 80을 넘긴 S는 늦게라도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일본의 인권운동가들을 만났고,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S는 동남아로 가는 여객선의 3등칸 구석방에서 조선 처녀들이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들을 보곤 했다. 문간에는 민간업자들이 지켜섰고, 화장실까지 따라가 감시를 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서 도망갈 데가 없는데 왜 저렇게 감시를 하나 궁금증이 들었다. 곧 사정을 알게 됐다. 조선 처녀들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바다로 뛰어드는 것을 막으려 감시 중이었다. 얼굴을 익힌 민간업자에게 “저 여자들이 울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이냐”고 사연을 물었다. 그러자 민간업자는 S에게 화를 내는 대신에 “위안부 공급을 제때 못 하면 내가 감옥에 가게 된다”고 푸념했다.

"우리도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오. 안 하고 싶다고요. 하지만 군의 명령으로 몇 날 몇 일까지 여자 몇 명을 데리고 와서 배에 태우라 하니, 행여 그 명령을 안 따르면 우리가 헌병에게 당하잖아요. 우리도 목숨 걸고 하는 거라고요. 헌병이란 게 호락호락 끝나지 않지요. 경찰도 벌벌 떨 정도니까"(히라오 히로코, 「통곡의 항로-일본군 ‘위안부’를 실어나른 육군 징용선」<일본의 군 ‘위안부’ 연구> 일본의 전쟁책임자료센터 엮음, 동북아역사재단, 2011년, 4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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