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음악의 중심. 그 심장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아침8시 드라이리허설로부터 시작해서 5시에 마치는 생방송까지. 칙칙폭폭 뜨겁게도 달려가는 이 무쇠전차에 올라서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전 자꾸 비듬처럼 머쓱하기만 합니다. 쿵쿵대며 몸을 들썩이게 하는 비트속에서도 나는 멍하니. 저 중학생 가수들은 자기가 노래하고 있는 이야기가 뭔지나 알까. 해괴망측한 신호를 보내는 저 안무. 나중에라도 그 뜻을 알면 부끄러울까. 이런 춤을 가르친 험상궃은 매니저들을 미워하게 될까. 어쩌면 고마워할 수도 있을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흔들어대고 목청을 토해도, 방송국 스탭들과 선배들에게 매번 구십도로 조아려도. 자신들이 그닥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그룹이라는 걸 알고는 있을까. 뒤에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동료의 태도가 느껴질 때 어떤 자괴감이 들까. 가끔은 생각이라는 능력 자체가 얼마나 고통일까. 바늘처럼 느껴질 시선은 어떻게 감당할까. 카메라의 위치와 컷의 분할까지 자세히 꿰고있는 우리 오타쿠 팬들은. 결국 가수들 앞에서 공격적인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자신들의 연애감정을 풀수 밖에 없는 걸까. 자신들이 판을 사주는 가수들 조차 자기들을 깔보는 걸 알고는 있을까. 얘들을 대체 누가 사랑해 줘야 할까. 복잡다단한 생각들이 머리 속에 꽉 들어찬, 우두커니 박혀있는 통나무 같은 조연출. 부끄럽지만 이게 요즘의 나입니다.
MC석 앞에 서서, 4명의 젊은이들에게 박력있는 큐싸인을 보내고, 괜찮았다는 격려를 하는 것. CG실과 특수영상실에 부탁해 만들어낸 가수들의 소개 브릿지를 보며 뿌듯해 하는 것. 정도가 이곳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보람인 걸까요.
물론 생각합니다. 언젠가. 그 언젠가. 지금하고 있는 경험들이 귀하게 쓰일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그런데 이게 참. 한줌 모래마냥. 꽉 잡히지가 않네요. 이런 걸로는 지금 제 속에서 넘어오는 쓴 물들을 막기가. 참 버겁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말입니다. 저는 <가요대제전>의 조연출을 함께 해야한다는 통보를 방금 받았습니다. 대단한 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 복잡다단한 업무 속에서 터질수 있는 잠재적 사고들은 오늘도 제 숙면을 방해할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욕도 들어먹을 수 있습니다. 어린 선배들에게 혼날 수도 있습니다. 피곤도 감당하겠습니다. 하지만 제발 밤톨만한 의미라도 좋겠습니다. 이 것이 세상을 섬기는 나름의 헌신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저의 오늘을 살기가 훨씬 수월하겠네요. 지금보다는 훨씬 신명나겠네요. 밤샘작업에도 가끔은 웃음이 묻어나겠네요.
화려한 음악중심. 알짜 조연출이 한 해를 보내며 느끼는 꽤나 떫은 소회입니다. 사랑하는 친구들. 형들. 진짜 지금 되게 보고싶고요. 부디 다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