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을 들다.
나희덕
잠이라는 빵을
그는 어제 아침부터 뜯어먹고 있다
삼복더위에 솜잠바를 입고
시장 입구 버려진 철제 캐비넷에 기대어
하염없이 하염없이 잠을 들고 있다
건어물상을 나와 정육점에 들어갔던 파리는
과일가게 앞 쪼개놓은 수박의 붉은 살 위에 앉았다가
그의 콧잔등에 날아와 잠을 빨아먹고 있다
그러나 굳게 닫힌 그의 두 눈은
잠을 삼키느라 여념이 없고
마를 대로 메마른 입술은
잠을 씹느라 움직일 줄을 모른다
그의 팔다리 역시
고픈 잠이 아직 남아 있는지
녹슨 캐비닛보다 더 굳게 잠겨 있다
그는 땀조차 흘리지 않는다
잠시도 잠들지 않는 시장 입구에서
그는 어제부터 잠 말고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너무 많이 먹은 사람처럼
이따금 입 밖으로 흰 액체를 흘려보낸다
그를 둘러싼 공기들이 석회질처럼 굳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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