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 같은 인스타그램

by 천이형님 posted Jun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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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에서 농담을 잘 안하게 된다. 온통 진지한 이야기 뿐이다. 사실 유머를 하기 전 나는 준비작업이 필요한 편이다. 농담이란 짖궃은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와 나 사이에 신뢰관계가 충분히 쌓였을 때 시작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밭을 일구는데 몇년이 걸리기도 한다. 

 

MBC는 농담이 판을 치는 곳이다. 2010년대쯤에 6개월이나 지속된 심각한 파업상황에서, 엄중한 전체 총회를 하는데도 그 사이 사이마다 우스개를 던지고 싶어하던 사람들. 그저 농담 한번 치고 싶어서 반짝반짝하던 직원들의 눈을 기억한다. 


그런 유머의 격투장 속에서 살았으니 나도 얼마나 끼고 싶었을까. 하지만 내가 스스럼 없이 유머를 던지기 시작한 건 2년 정도가 지나서다. 상대가 편하게 들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아마 경력사원으로 들어온 내 자격지심과 경계심 때문일 거다. 

 

인스타그램에 유머가 적어진 것이 보인다. 예전만큼 웃기지 못해 아쉬운 것이 아니다. 그만큼 믿고 말할 만한 사람, 믿고 의지할 사람이 적어진 신호일거다. 한 때는 늘 사람들이 찾아오던 나였는데 절간처럼 조용하다. 


나이 50도 안됐는데, 퇴직도 안했는데 벌써 고독하다. 이 농담같은 현실이 제일 농담같다. 지금의 상황이 나에겐 제일 큰 유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