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뷰] 추적60분 피디가 바라본 피디수첩 사태
2005.12.13.(화)
딴지 편집국
일명, 피디수첩 사태. 프로그램 폐지로까지 이어진 이 사태를 두고, 논쟁은 여전하다. 논쟁 뿐인가. 취재윤리, 취재영역 그리고 취재 태도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그간 맞아 온 포화도 참 엄청나다.
프로그램 문까지 닫아야 하는 현 피디수첩 사태를 맞아, 본지는 이들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이 궁금했다. KBS <추적60분> 책임프로듀서로 있는 구수환 PD를 만나기로 작정한 이유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는 국내 최초라는 역사도 있고, 그 자신 <추적60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인 구수환 책임피디는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해 줄 말이 많을 것 같았다.
그를 만난 건 지난 12월 11일 낮, 한국방송공사 시사정보팀 사무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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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PD수첩> 취재팀의 취재윤리 파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탐사 취재라는 특성상 강압성 배제나 윤리 준수 등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
구: 맨날 인터뷰만 하다가 인터뷰를 받으니까 좀 이상한데.. (웃음) 이제, 강압성이란 부분도, 예를 들어서 있는 사실을 갖고 들이대면서 이 부분에 대해 왜 인정하려 들지 않느냐, 이런 부분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사람이야 강압적이라 보겠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고. 저쪽에서 말을 안하니까.
이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전에는 이런 프로그램 제작을 할 때 상대방들이 몰래카메라나 이런 취재방법을 전혀 몰랐는데, 요즘엔 어느 정도냐면 취재진 소지품 검사를 한다든지, 외려 상대방이 거꾸로 우리 얘기를 녹음하거든요? 이번 황우석 같은 경우도 MBC 쪽 얘기가 녹취가 되는 바람에 <PD수첩> 쪽이 저렇게 곤욕을 치르고 있는건데..
어쨌든 상대방은 자신의 잘못된 부분들을 감추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여기서 과연 그냥 얘기를 해서 풀릴 수 있는 문젠가.
그리고 또 하나는, 만약에 우리가 원칙적 방법을 갖고 취재를 했을 때 가장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 상대방은 응답을 하지 않았다, 이걸 갖고 해답이라고 제시를 할 때가 많아요. 그랬을 때 과연 이것이 프로그램을 보는 입장이나 취재를 하는 입장이나 한계가 있다고 이렇게 끝낼 일인가.. 이걸 우리가 생각을 좀 해봐야 할 대목인데.
취재의 강압성이란 부분은.. 없는 사실을 갖고 얘길 해서 상대방이 위협 속에 진술을 하는 거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번 같은 경우에도 좀 이해가 안가는 게 뭐냐면, 일단은 인터뷰를 했잖아요? 인터뷰를 했는데, 강압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에 그 내용이 다를 수 있다.. 이런 얘긴 우리 같이 취재를 해 본 입장에선 납득이 잘 안되는 부분이죠.
왜냐면 자기가 발언한 부분이 공개됐을 경우에 황우석 교수나 이 부분이 국민적 관심사고, 어느 정도 파장이 올 것은 예상 했었을텐데, 만약 그 부분이 사실이 아니라면 끝까지 아니라고 하면 될 부분이란 말예요. 이게 무슨,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데리고 가서, 납치를 한다든지, 아니면 뭐 협박을 한 것도 아니란 말이죠.
딴: 거짓진술을 유도한 게 아닌 한 진술된 내용을 문제삼는 건 온당치 않다는?
구: 아니, 거짓진술을 유도한다 하더라도, 자기는 과학자인데, 과학자의 양심상 그게 아니라면 아니라고, 인정을 안하면 될 일인데, 인정을 하고 나서 나중에 한참 있다 사안이 시끄러워지니까 다른 언론매체가 갔을 때는 또 번복해 버리는 대목. 이거는 제 경험에 비춰보면 상당히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생각이죠.
딴: 피디가 미리 내린 결론에다 과정을 꿰맞추는, 피디저널리즘의 병폐 때문이란 비판이 일기도 했는데.
이런 주장은 납득이 안되요. 납득이 안되는 게, 기본적으로 취재를 할 때는 내가 왜 취재하냐는 기획의도 없이는 진행이 안되는 거예요, 이거는. 신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떤 사안을 취재할 때는 취재의 큰 줄거리를 잡고 이걸 보도함으로써 어떤 영향을 미칠지, 보도의 당위성은 어디 있는지 같은 걸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이거든요? 근데 요즘 얘기 나오는 거 보면, 이를테면 '황우석 죽이기'를 목표로 몰고간 거 아니냐고 하는데. 다른 데도 아니고 언론에 종사한다는 사람들이 이런 평가를 하는 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싶어요.
어떤 취재든 결론을 갖다놓은 건 아니고, 문제가 된 사안에 대해서 취재를 하다 보니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자꾸 드러날 거 아닙니까? 그러다 보면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지점이 있어요. 그럼 그 지점에 대해 최종적으로 확인을 하는 거죠. <PD수첩>팀도 황우석 교수를 상대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니까 정확한 진상이 뭐냐, 여기까지 진척이 되다가 시끄러워지면서 저렇게 된 거 아닌가 해요.
피디저널리즘?
'진실추구'를 본령으로 한다는 방송국 PD들의 보도행태를 방송계에선 이렇게 말한단다. '사실추구'를 기본으로 하는 기자들의 보도행태를 가리키는 '기자저널리즘'과 대비적되어 쓰이는 용어란다. 이번 <PD수첩> 사태에 대해 <조선일보>에서 '사실추구를 무시한 진실추구의 비극'이라 비판한 것도, 이런 구분에 따른 것이었다.
딴: <PD수첩>측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진 방송이 아예 안돼 명확치 않지만, 기자회견 때 PD들의 '중대증언' 발언은 어떤 결론제시인 걸로 보게 되는 측면도 있잖은가.
구: 오늘 보도를 보니까 황우석 교수가 직접 나서서 해명을 하겠다고 하던데, 바람직한 일이고. 사실은 진작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갔으면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게 여기까지 왔을까 생각이 들어요.
딴: 동일한 취재원을 놓고도 취재시점에 따라 YTN과 <PD수첩> 간에 확보한 진술내용과 해석이 엇갈렸다.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이런 상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구: 이런 부분이 제일 답답해요. 요즘 우리가 겪는 건데, <PD수첩> 사태 이후 취재를 해왔더니 방송 나가기 한 2, 3일 전에 못내보낸다, 막무가내로 나왔을 때, 우리 입장에서는 변호사한테 자문을 구하는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게 자문을 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못내는 거예요. 일단 취재원에 대한 녹취테잎 내용이 모두 공개되면 과연 녹취 당시에 강압성이 있었는지, 그 강압성이란 게 어떤 거였는지, 뭐 당연히 그게 진술내용의 신뢰성을 훼손할 만한 거였는지가 밝혀지겠죠.
그리고, 취재원이 어느 정도 얘기를 쭉 하다보면, 스스로 아무리 불리해지더라도 기본적으로 팩트 자체에 대해서는, 차라리 말을 아예 안하거나 접촉을 안했으면 안했지, 얘길하는 경우가 보통이거든요. 근데 얘길 구체적으로 한 걸 보면, 과연 강압적 분위기였는지도 의구심이 많이 들고.
뒤집어 가지고, YTN에서는 <PD수첩>측 하고는 다른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단 말이예요. 그 인터뷰 내용 보도된 걸 보면, 취재윤리 문제에 집중을 해 가지고 <PD수첩>이 무슨 패륜아인 것처럼 다뤘지, 그 이면에 깔린 자기 인터뷰의 진실성 여부에 대해선 별 비중을 안둔 것 같더라고요?
이후에 와이티엔 보면, 요즘 부각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정확하게 그 사람은 무슨 얘길 했는지, 이 부분에 대해 별 내용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방적으로 너무 몰아가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보니까 YTN에서는 취재원에 대한 협박이 있었다는 부분을 확인하고 와서 <PD수첩>에 답변을 요구했더라고요? <PD수첩>에선 프로그램을 통해 얘기하겠다고 하면서 유야무야됐는데.. 어쨌든 사안을 보는 지점이 서로 다르다, 그러니까 YTN은 취재윤리 측면을 봤고 피디수첩은 윤리보다는 진실에 접근하는 데 주안점을 뒀고.
전 개인적으로 그렇게 봐요. 양비론인지 모르겠는데, 취재과정에서의 윤리적인 문제도 얘기돼야 하지만, 문제의 발단은 취재원 진술이 진짜냐 가짜냐에서 시작된 거 아니겠어요? 이걸 같이 다뤄줬으면 YTN이 오해의 소지를 차단할 수 있지 않았나 싶고.
기자저널리즘과 피디저널리즘의 차이가 이런 파장을 일으켰다고도 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봐요. 사실추구 따로 진실추구가 별개인지, 사실과 진실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실을 보도하려 해도 진실을 알아야 하고 진실을 말하려 해도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이걸 무슨 편가르기 식으로 얘기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거죠.
딴: 하나의 진실을 놓고도 사람들 행보가 엇갈리지 않나.
구: 기자와 PD를 나눠서 얘기하지만, 1980년대까지 저널리즘이 무엇인가, 그 저널리즘이라고 하는 거에 과연 얼마나 충실했던가를 묻고 싶어요. 이제 와갖곤 피디는 이런데 기자는 어떻다고들 하지만, 기자저널리즘과 피디저널리즘의 차이, 그런 거 없어요 사실. 사회감시 기능에 충실하고 권력의 무소불위를 제어할 수 있는 사회적 촉매 역할을 언론이 하는 건데, 기자니 피디니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또 피디들한텐 취재원칙의 기본을 모른다고도 하던데, 취재원칙이란 게 무슨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아니고. 사실이나 진실에 어떻게 한 발 한 발 다가갈 것이냐를 놓고 얼마나 공부하고 고민하는데요. 그렇게 취재원칙을 마련하는 건데도, 마치 아무데나 가서 욕하고 협박하고 떼쓰고 몰래카메라 찍고 하는 것처럼..
안 그래요. 오히려 당하고 낭패보는 게 보통이지. 그리고 제일 화가 나는 게, 피디들은 20대 작가들이 쓴 콘티대로 찍고 어쩐다는 건데, 난 그런 기사 쓴 사람 보고 여기서 일주일만 있어보라 하고 싶어요.
딴: 그 기사야말로 취재원칙의 기본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는 말씀인가. (웃음)
구: 사실 확인도 안하는 거죠. 그러니까 문제가 뭐냐면, 하이에나 저널리즘이라고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거기로 확, 쏠리다가 나중에 사실확인 들어가서 해명 요구하면 나 몰라라 하는 거거든요. 궁색한 변명이나 하고. 원고요? 이거 다 PD들이 씁니다. PD들이 다 정리해 놓으면, 작가들이 보완적으로 마무리 해주는 거거든요. 더구나 소송이나 법률적 문제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PD들이 사실이나 구성에 대해 꼼꼼히 확인을 안하면 프로그램 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소송을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보장벽이 높거나 동일한 취재원 진술이 엇갈리는 경우죠. 백 번을 봐도 저 사람이 나쁜 놈이고 결정적 증거가 있는데, 소송에선 지는 경우가 많아요. 저같은 경우도 형사소송까지 포함해 5번인가를 당했는데, (웃음) 자문변호사가 있지만 이런 경우를 막기는 힘들죠.
결국 다 자기가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소송을 겪다 보면 뭐가 문제고 어떻게 풀어야 될지 노하우가 나름대로 생겨요. 진행과정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코멘트를 하고. 그런데 무슨, 써준 거 갖다 얘기한다 이러는 건 말도 안되죠. 치사한 소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얘기하면 기자들은 더해요, 언론중재위에 가 보면.
딴: 그렇다면 그런 소리가 나오는 어떤 분위기가 있다는 건가.
구: <추적60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땡전 뉴스 하고 그럴 때잖아요.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고발프로그램이 나오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통쾌한 거예요. 그렇게 군사정권에 대해 억눌린 불만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해소되고 그랬던 건데.. 지금 같은 조사를 한 건 아니지만, 당시 시청률이 60%까지 나오고 그랬다고.
1990년대 들면서 이런 프로그램들이 활성화되니까 상대적으로 기자들의 영역이 위축된 게, 비근한 예로 출입처 기자들 하고 달리 PD들은 그런 게 없단 말예요. 출입처 기자들 경우엔 소속부처나 기관을 중심으로 엠바고 걸고 뭐 이러는 건데, PD들이 가 가지고는 휘젓고 다니다 보니까 (엠바고가) 자꾸 깨지는 거예요. 국회 같은 데서 국회의원들이 그냥 하던 말도, 기자들은 그저 자기들끼리만 알고 그러던 게 힘들게 되니까 기자들한텐 PD들이 성가셔진 거야. 카메라도 오래 찍고 그러고 하니.
또,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갖는 파괴력을 안 것도 있죠. 그래서 각 방송사나 언론사마다 기자들이 탐사보도 꼭지를 만드는데, 단편적인 뉴스보도만으로는 안되겠다 싶었던 거예요. 걔중엔 취재능력이 상대적으로 나아서 그런지, 어떤 면에서는 피디들보다 잘 합니다. 확실히 장점이 있죠. 그래서 PD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피디들이 왜 보도를 하느냐고까지 말하는 상황이 된 거죠. 서로 평행선을 긋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동안 PD들이 해온 취재방식의 장점을 알게 된 셈인데, 단편적 보도가 충족할 수 없는 부분, 그런 데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기자들도 다루기 시작한 건 바람직한 일이라고 봐요.
PD가 할 소리냐고도 하지만, 중요한 건 한국의 언론저널리즘이 제대로 가고 있느냐. 그렇지를 못했던 게 사실이거든요. 예전에는 언론, 권력기관이었죠, 어딜 가든 혜택을 받고. 하지만 이제는 생존경쟁이 벌어지다 보니까 보수는 보수 쪽으로 가고, 진보는 진보 쪽으로 확확 가면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신문은 그렇지만 방송은 이제 소송 문제 때문에 예전처럼 집요하게..
그런 면에서 <PD수첩>에서 보여준 집요함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그런 집요함이 지금은 상당히 많이 죽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기자들이 탐사보도를 강화하는 건, 피디들한테 긍정적인 의미의 긴장을 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는 거죠. 이전투구식으로 서로 싸울 게 아니라, 사회적 감시기능을 강화한다는 맥락에서 보완적으로 나가야 할 일이 아니냐.
신문에선 기자 하구 PD가 협업을 해야 한다 어쩐다고 하는데, 서로간에 보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어떤 신뢰관계가 뒷받침되지 못한 상황에서 협업을 말하는 건 좋은 말만 하고 싶은 사람들 얘기고. 밖에서야 피디네 기자네 하지만, 결국 같은 일 하는 건데. 지금으로선 먼저 생산적 긴장을 주고받는 경쟁관계가 형성돼야 한다는 거고, 그렇지 않고서 협업 얘기하는 건 엉뚱한 방향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겁니다.
딴: 그럼 기자와 PD라는 구분, 소모적인 편가르기용인가 보다.
구: 정작 우리는 피디저널리즘, 기자저널리즘 이렇게 별로 생각 안해요, 사안 갖고 어떻게 다가갈까 한 달 두 달 머리 싸매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웃음) 기자 쪽서 할려면 해라, 그러다 기자 쪽서 잘하면 야, 뭐냐.. 우리는 이렇게 반성도 하구 그러거든요.
얼마 전에 보도국에서 최 아무개 기잔가, 우리가 봐도 대단한 친구 하나 있는데, 6개월 파가지고.. 왜 이해찬 총리 파헤쳤잖아요. 저 기잔 우리가 도저히 안된다는 걸 저렇게 해내는데, 우린 뭐가 문제였던 거냐 하는 식으로 굉장히 좋은 참조점이 됐어요. 근데 기자냐 피디냐 나누는 건, 그건, 정말로 피디저널리즘이 뭔지 기자저널리즘이 뭔지조차 모르는 거라고 봐요. 공격받고 싶지가 않은 거지.
신문 보니까 한국방송 출신 이사가 기자저널리즘이 어떻고 피디저널리즘은 어떻다고 책을 냈다던데, 과연 그분들이 그런 거에 뭘 얼마나 알고 있으며, 더구나 5공 시절 땡전 뉴스할 때 뭐하고 있던 분들인지.. 그땐 그런 데 앞장서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무슨 얘길 하느냐는 거예요. 지금 패러다임이 얼마나 달라져 있는데.
기자 파트 내부에서 보도를 둘러싼 어떤 입장의 분화가 일어나는 건진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최근 기자들이 탐사보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거예요. 중요한 건 한정된 시간 안에 다뤄야하는 만큼, 문제가 되는 사안에 대해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공략하고 사실관계를 취재할 거냐를 놓고 전문가한테 자문하거나, 그렇게 세네 번의 검토와 확인과정을 거친다는 거거든요.
이런 거지. 피디가 정말로 이걸 때려갖고, 이렇게 생각해가지고 감정적으로 가기로 하면 죽일 사람 많아요. (웃음) 그렇지마는, 잘못한 건 분명한데 법률적으로 무혐의 났을 경우엔 속으로 삭혀야 하는 거고, 이렇게 끝나지 않을 그런 접근법이 있어야겠구나 하는 식으로 경험을 쌓는 거죠. 그래서 취재과정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하나하나 찾아가는 거지 결론부터 내리고 가는 건 아니라는 거고, 더욱이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가면 무리수를 범할 수밖에 없어요. 사고가 나는 거지.
딴: 그 대목이 피디수첩에서 저지른 실수 아니냐는 비판인데. 무리한 결론을 이끌어 내려 했던 게 아니냐는 거다.
구: 근데, PD가, 이쪽으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고, 아무리 무식한 피디라 하더라도 뭐, 결론을 내렸다 칩시다 그러면. 그렇더라도 아무런 근거도, 아무런 조사도 없이 저 사람을 죽여야겠다, 그렇게 무리한 결론을 내리는 피디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 더구나 이후의 파장을 생각했을 때, 어떻게 피디가 세상에, 자기가 얘기할 근거도 안 만들고 공격을 하겠냐는 거예요. 이런 데 대한 사전논의도 없이 보도가 됐다면, 그거는, 그건 피디가 정말 나쁜 사람인 거지. (웃음)
그리고 이런 게 있어요. 예전에 '카메라출동'이나 이런 거 보면, 교통경찰관 촌지받는 거 갖고 보도하고 나서 난리가 나요. 경찰청장은 어떻고 했다지만, 그게 바뀌었습니까 그래서? 가장 큰 문제는 뭐냐면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걸 방기해서 현실을 이 모양 요꼴로 만든 책임이 있다는 소릴 언론이 듣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안이 딱 걸리면 저걸 건드렸을 때 앞서 말한 부분을 얼마나 환기할 수 있느냐, 이런 것부터 먼저 판단을 해요. 그러다보니 주로 윗선을 중심으로 하는 공격적인 인터뷰 시도도 하고.
<PD수첩>의 경우도 보면, 여러모로 이번 건이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지는 본인들도 충분히 예상했을 거 아니예요. 그런데 이에 대한 핵심적 내용을 확보도 안하고 보도를 했다.. 과연 어떤 피디가 그렇게 어마어마한 부담을 지고 총대를 맬까. 물론, 과학자도 아니면서 판단을 내리고 그렇게 나갈 수 있는 거냐고도 하던데, 제 생각은 그래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피디들은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고 사실확인을 하는 거예요. 지금 사실이 이런데, 판단은 시청자 여러분들이 하십쇼, 이렇게 가는 거지. 피디가 결론을 냈나요 그래서? 사실 난자제공 문제만 다뤘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거예요.
그러면 누가 이 문제를 이렇게 크게 만들어놨는가. <PD수첩>이 하려고 해서 그런 건지, 사태의 파장이 커지다 보니 <PD수첩>이 그렇게 하게 된 건지. 한 가지 좀 의문인 게, 왜 저렇게 피디수첩 쪽이 수세적인가. 광고문제도 있고, 여론을 의식한 것도 있어 그랬겠지만, 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길래 이랬던 건지 궁금해지더라고. 피디가 아무리 생각이 없다 해도, 더구나 본인들이 자연계도 아니라는데, 과학자들한테 검증도 안받고 언급을 했겠느냐. 못해요, 그렇게는.
저희가 삼성 문제 취급할 때만 해도 참여연대랑 법률적으로 얼마나 체크를 다하고 그랬는데요. 하물며 과학 분야를 다루는데 죽이겠다는 의도로 그렇게 경솔하게 나왔을지는 의문이예요.
딴: 일각에서는 이번 파문이 '삼성 X파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돌리기 위한 국정원의 공작이라는 음모론도 나온다.
구: X파일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그거 터졌을 때만 해도 사람 명단 하나 공개하는 것 갖고 몇 번의 자문을 거쳤는데. 이런 문제에 대한 게이트키핑 없이 CP가 갔을까.. 나중에 토씨 하나로 문제가 되면 PD로선 치명타예요. 한 번 소송으로 얻어맞잖아요, 이제 방송 안 맡길 테니까. 막말로 병신 되는 거죠, 일할 의욕도 안나고. 소송 휘말려서 정정보도해 버리면 피디로서 자격이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 버리는 셈이니까. 이런 걸 생각하면 게이트키핑이나 변호사 자문 없이 무리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고.
취재과정상에 문제 소지가 있었다 하는 부분을 얘기하지 않은 건, 그게 크게 문제가 되리라는 생각보다는 방송이 보류될지 모른다는, 회사쪽에 대한 불신이 더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던데. 어쨌든 이거야 피디 본인이 잘못을 인정했고, 저희도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쪽이죠.
다만 이제 이렇게 되면, 시사탐사프로그램 취재에 따르는 고통이나 노력의 강도는 훨씬 더 커질 겁니다. 그런 면에서는 하나의 숙제가 떨어진 거라고도 보죠. 이를테면 아까 얘기처럼 증거로 삼을 만한 취재원 진술이 엇갈리거나, 진술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취재원에 접근할 때 어떻게 하면 좀더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느냐 하는 건데. 사실상 무지무지 힘들어지는 거죠.
몰카 경우도 부부간의 사생활 찍겠다는 것도 아니고 공적 활동에 관한 건데, 중재위에서 안 된다고 합니다. 날짜는 꼬박꼬박 돌아오는데, 거기에 맞추는 데 드는 품은 더 많아질 거고. 결국 이번 취재윤리 건은 <PD수첩>한테만 그치는 일이 아니라 여타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들한테 참 풀기 힘든 숙제를 던져준 셈이예요.
딴: <PD수첩>이 과학이슈에 개입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
구: 그렇게 말하자면, 과학담당 기자들은 그럼 뭐했냐고 반문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달리 말해 <PD수첩>이 저렇게까지 움직일 동안 과학담당 기자들은 뭘 하고 있었느냔 거죠. 다만 시청자들이 뭔가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직접 파고 들어갈 수가 없다 보니 (시사프로그램 등이) 대신 알려주는 거고. 그 부분을 당사자들이 인정을 안하면 본 사람들이 판단하도록 할 일이지, 무슨 단죄를 하고 이러는 거여선 곤란하죠.
딴: 결론을 열어놓더라도 관점은 어떻게든 있는 것 아닌가. 이번 경우 관점을 문제삼고 있기도 한데.
구: 굉장히 중요한 게 뭐냐면, 난 관점은 없다고 봐요. 가령 어떤 고발 프로그램을 만든다 칩시다. 이 때 관점이라는 게, 저 사람은 죽여야 한다, 이런 거 아니거든요. 관점이 뭐냐 하면, 그거는 이러저러한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아닌 건 아닌 거라는 얘기니까. 그렇게 벗어난 부분을 파헤치는 걸 갖고 피디가 무슨 관점을 가지고 이러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딴: <PD수첩> 제작팀이 노조나 특정정당 출신이라 일종의 진보 쪽 관점에서 진행했다는 일부 지적은 어떻게 보시나.
구: 그러니까 저는, 이런 지적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는 얘기라고 봐요. 왜냐하면 자, 언론을 한 번 봅시다. 제가 지난 1998년도에 "조선일보를 해부한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가, 결국 불방됐어요. 이번에 <PD수첩> 터졌을 때 보니까 그 때 생각이 나더라고.
김대중 대통령 당선됐다 해가지고 먼저 1편 "한국방송, 굴종과 오욕의 역사"라는 프로그램으로 가고, 2편은 신문, 다 얘기할 게 아니라 대표적 신문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자.. 그래서 조선일보를 다뤘고 내가 담당을 했는데, 결국 방송이 못나갔어요. 제작팀도 해제되고. 1998년도에 그렇게 했는데도 결방조치가 난 걸 보면서, 언론개혁이 참 만만치 않구나 이런 걸 절감했는데. 그 때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이번에 조중동 보도를 보면서도, 가슴 아팠죠.
딴: 방송사 입장과 특정 프로 제작진 입장이 같지 않을 수 있는데도, 밖에선 그냥 하나로 본다.
구: 글쎄, 그건 좀 (질문자와는) 생각이 다른데.. (회사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회사에 몸담고 있는 사람 입장으로서 회사방침에 따라야 할 건 따라야 할 게 있다고 보고. 물론 그 전제가 뭐냐면, 회사가 개혁적으로 많이 바뀌어서 아이템 선정이라든지 하는 제작상의 자율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건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생각이 다르다고 달리 가야 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이 사안에서 특기할 것은, 방송에 대한 네티즌들의 평가입니다. 네티즌에 의해서 방송이 좌지우지되잖아요. 신문은 이미 그런 일을 많이 겪었단 말이예요. 불매운동이라든가. 그런데 방송은 그런 게 없었어요. 이번에 MBC가 그런 걸 겪은 부분이 있었죠. 신문사나 우리나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지만, 중요한 사실은 뭐나면 방송의 힘이란 게 예전처럼 무소불위로 가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네티즌들의 공격적 성향이 광고주를 잡고 흔들었던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드는 생각은, 광고주가 과연 여론 때문에 광고를 뺐겠냐. (웃음) 그건 아니라고 보고, 광고주들도 이번 기회에 광고주의 힘을 보여준 게 아닌가. (웃음) 여차하면 뺄 수 있다는.. 이거는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런 부분들을 광고시장에서 놓고 봤을 때, 결국 방송이 광고주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렵죠. 신문들이 특히 요즘 광고때문에 난리 아닙니까.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도, MBC 그 부분이 자꾸 확대가 되면서, 결국은 방송도 성역이 깨졌다는 거, 이런 부분들은 대단히 주의깊게 봐야 될 것 같거든요.
딴: 이런 식이면 시사프로그램 방송 자꾸 안 만드는 쪽으로 가지 않나 싶다. 간다 해도, 예민한 부분은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는 쪽으로 갈 거고.
구: 시청률 추이를 봤습니다. 이번 파동 이후 시사프로그램 전반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지난주 저희 프로그램 시청률을 주의깊게 봤는데, 시청률이 평소보다 세 배가 더 높게 나왔어요. 그래서 이번 사태가 PD저널리즘에 대한 공격이 아니고, 사안에 대한 판단이 작용한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요즘 느끼는 것은 신문에서 얘기하는 섹시한 아이템, 선정적인 아이템, 그걸로는 시청률 안나온다는 거예요. 요즘 인터넷 매체들이 일상에 깊숙이 자리잡으면서 시청자들이 어지간한 정보는 다 알고요. 그러면 기존 방송사의 어떤 프로그램이 영향력을 갖느냐 하면, 인터넷에서 나오는 수준보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거죠. 그렇게 깊이 들어간 화면들이 나와야 해요. 이런 것들이 충족되는 경우는 시청률이 다 높습니다.
딴: 이번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PD수첩>이 다루기에는 사안의 비중에 비추어 제작기간이 짧았고, 그 짧은 기간에 한정된 인력으로 사안을 다루려하다보니까 문제가 생겼다는.
그것은 <PD수첩>의 제작시스템을 안봐서 모르겠는데, 이게 한 6개월 됐잖아요? 그 정도 제작시간이 그렇게 짧은 시간인가. 다큐멘터리 제작하는 사람들도 6개월이면 시간 길어요. 그리고 제보가 들어오면 취재가 굉장히 짧아질 수 있어요. 확실한 제보가 들어오면 그 제보를 여러 전문가들한테 확인시켜서, 이건 좀 문제가 있다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하나씩하나씩 점검해 나가는 거죠.
<PD수첩> 파문을 지켜보면서 황박사도 나서서 직접 해명하겠다고 했으니까, 그 결론이 이제 어떤 식으로 나올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걱정스러운 것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오든지 우리 사회가 그 결과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예요. 개인적으로 그 부분이 걱정스러워요. 사회가 사실 그대로 받아주면 되는데, <PD수첩> 보도가 잘못될 경우건, 황박사측의 주장이 아닐 경우건 승리자는 없고 (웃음) 혼란만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딴: 저널리즘 자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 같다.
구: 예전에 제가 종군기자로 분쟁지역을 6년을 쫙 다녔어요. 뭐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그 다음에 팔레스타인, 동티모르, 작센, 코소보까지 갔다 왔는데, 거기서 딱 본 게 뭔가하면, 정말 부끄럽더라구요. 왜 부끄럽냐 하면 한국기자를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정말 거기는 세계에서 다양한 기자들이 엄청나게 와 있어요. 엄청나게 와 있는데..
저는 거기서 기자들이 어떤 진실을 찾으려고 했을 때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만나보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기자는 항상 현장을 지켜야한다고. 그 때 프로그램 만들고 나서 내가 방송생활을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 더 이상 추구해야 할 목표들, 부분 다 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사람들은 야합이라는 게 없고, 오로지 원칙.
사회는 강자와 약자가 있잖아요. 그러면 강자는 힘도 있고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데, 없는 사람들이 경쟁이 되겠습니까? 결국 언론은 약자 입장을 대변해줘서 항상 공정한 경쟁을 해주도록 해야한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라는 게, 사회적 감시기능이라는 게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딴: 이번 일로 저널리즘에 대한 사회 인식이 제고되고, 또 프로그램 제작진도 튼실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이 있는 거고,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워지고. 어쨌든, 그렇다고 기가 죽으면 안되잖아요, 끝까지 진실을 파헤지는 걸 해야되고 누가 뭐라 하든 말든. 그것은 사람들이 무서워서 하고 말고 할 게 아니라,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는 것은 이 분야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여기에 과연 기자니 PD니 하는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대원칙이라는 부분에서는 협력관계든, 다른 어떤 형태든 서로 같이 가는 겁니다. 그것이 생산적인 견제로 이어져서 사회적으로도 득이 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고 하다 보면, 모든 게 국민한테 돌아가는 게 아닌가. 이런 차원에서 어떻게 얘기하든지간에 우리는 원칙대로 가야 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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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초에 일찌감치 인터뷰를 잡아놨는데, 약속 당일부터 주욱 연락 두절. 역시 업계도 많이 몸사리나 보다 했더랬다. 그런데 과로로 입원해 있었다 한다. 부득이하게 연기됐던 인터뷰는 80분여의 시간을 넘기고 끝났다.
그는 공적이 된 피디수첩 제작진을 향해 동종업 종사자로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고, 과연 그들이 그 정도의 비난과 제재를 받을 만큼 무모한 접근을 했을 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
단순히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만.. 어쨌거나 그를 통해서 황우석 사태를 다룬 언론의 보도방식 문제, 그 중에서도 '<PD수첩> 사태'를 둘러싼 여러 쟁점을 향한 업계 내부의 정서는 나름 확인할 수 있었지 싶다.
이제 상황이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아직도 쟁점은 여전하다. 피할 수 없을 바엔 즐기라고 했다.
아무튼지 다이내믹 코리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