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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아래층에서 고요한 싸움이 한판 있었다. 누가 세탁실을 한새벽에 사용했었는가 보다. 그래서 세탁실 바로 옆방의 젊은 여자가 잠을 설쳤던 모양이다. 그 다음날 세탁실 문에 이런 메모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새벽에 세탁기를 돌리지 마세요!” 얼마 후 답장도 붙었다. “입을 옷이 없는데 새벽에라도 돌려야죠.” 거기에 대한 답장은 이랬다. “정말 생각이 없는 분이군요” 이런 식으로 몇 번의 메모지 싸움이 오고 갔는데, 참 희한한 일이다. 그냥 얼굴을 보고 따끔하게 말하면 될 일인데 그게 안 되는가 보다.

싸움은, 어느 한쪽이 피가 터지거나 울음이 터지거나, 혹은 흥분하거나 하면 지는 것이다. 나도 몇 번 주먹이 오고 가는 싸움을 해보았다. 전부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싸움을 잘한다는 것,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무슨 영화에나 나올 법한 발차기 혹은 화려한 액션, 그런 것이 먼저 떠오를 텐데 절대 아니다. 끝까지 단념하지 않고 달라붙는 것이다. 내 싸움의 풍경이 그랬었다. 고교시절, (공고시절) 기계과의 짱이라는 녀석이 작고 약한 아이들에게 컵라면 심부름을 시키고 돈을 빼앗고 하는 게 나는 너무 못마땅했다. 그래서 하루는 내가 그의 어깨를 내 어깨로, 말하자면 감정적으로 세게 치며 지나갔다. 짱이 나에게 말하길, 개새끼가 왜 치고 지나가노! 나도 답했다. 뭐 씨발놈아! 짱이 나에게로 가까이 와서 주먹을 쳐들고 말했다. 니 뭐락캤나? 니 겁대가리 상실했나?! 나는 또 답했다. 씨발놈아 귓구멍에 좆 박았나? 눈깔을 확 파먹어 버릴까! 손 안 내리나!  

그렇게 해서 싸움이 시작됐다. 나는 오로지 한곳만 때렸는데, 그곳은 짱의 눈이었다. 한 손으로는 짱의 머리채를 잡고 한 손으로는 오로지 눈만 죽어라고 때렸다. 물론 같은 동작만 반복하는 나도 많이 얻어맞았다. 떨어져 나가면 다시 달려들어 한 손으로는 머리채를 잡고 한 손으로는 눈만 때렸다. 그 싸움은 이미 내가 이긴 것이다. 짱은 무너졌다. 눈 하나가 까만 혹처럼 부어올라 찢어졌다. 피와 눈물이 동시에 터졌다. 그래서 나는 웃었다. 때리면서 웃었다. 그 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시집을 읽는다고 나를 놀리던 녀석들도 없어졌다. 그게 제일 좋았다. 기계과에 평화가 왔다.

아래층의 고요한 싸움도 그때의 내 처절한 싸움도, 그러나 싸움은 안 좋은 방법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참았다. 그런데, 며칠 전 내게 일이 터졌다. 발표작과 관련된 일이라서 아주 민감하고 그래서 더욱 화가 나는 일이었다. 한참을 망설였는데 결국은 또 참았다. 아니, 어쩌면 아래층의 고요한 싸움과 고교시절의 처절한 싸움 사이에서, 선택을 못한 것 같다. 잘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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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워서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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