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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이름을 건 효도관광을 취재하고자
3박5일의 일정으로 태국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다녀왔던 곳은 휴양지였지만
다음주 사보에 낼 기사를 위해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야했고
보조 가이드 및 모니터 요원의 역할도 감당 해야했기 때문에
저녁이되면 녹초가 되어 나가 떨어지던 강행군을 소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천원짜리 팁을 구걸하며 굽신거리는 현지인들 위에
관광객들이 군림하는 것이
이곳의 자연스러운 문화였지만
나는 도통 편치 않더군요.

그저 그들의 가난함과 대조되는 나의 부유함이
감당할 수 없고, 부끄럽다는 생각만 한가득.
돌아오는 길에는 일상의 피곤함을 떨쳐버리기는 커녕
많은 고민들을 되려 짐짝처럼 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숨이 턱턱 막히는 부담감이 웃음을 가시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들은 하나둘 자리를 잡아가는데,
나는 여전히 어둔 밤거리를 거닐며
질풍노도의 사춘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한 것이 요즘의 심정입니다.

그저 배운대로 산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가르침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가는 길인데
이게 참 막막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법 요령있게 사는 친구나
적당히 무시하고, 눈감고 살 줄 아는 친구들이
사실 부럽기도 하고, 약오르기도 합니다.

지 앞가림도 못하는 것이
무슨 구제요, 봉사냐.
싶은 생각이 들 때면
한심하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나찌에 의해 점령당한 독일을 구하기 위해
미국에서 고향으로 돌아왔던 본회퍼가
"배에 오른 이후로 장래에 대한 나의 내면적인 분열이 사라졌다"고
고백하던 기록은 오히려 희망이 됩니다.

뜨문뜨문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
저는 올해를 마치면 조금 새로운 시작을 하고픈 계획이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취직을 한 이후로 봉급의 8할을 모으고 있기도 하구요.
늘 생각해왔던 실제적인 액션을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때쯤엔 나도 "배에 오른 이후로 장래에 대한 나의 내면적인 분열이 사라졌다"고
담담히 고백할 수 있는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생활이 구제가 되고, 생활이 헌신이 되어야하는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이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더 탄탄해져야 하는 것은 지금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생이 고단하다 할지라도 모두들
Keep The Basic.

건승하십시오.
  • 이원석 2005.05.29 12:41
    대학에 몸담고 있을 때는 대학이 세계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오히려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많이 깨닫게 되네요.
    형님의 한 걸음에 지지와 박수를 보내며-
  • 최현주 2005.06.02 14:39
    생활이 구제가 되고 생활이 헌신이 되어야 하는 그 때...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일 수 있을까요?
    정말 그래야 될텐데 말입니다.^^

    다음 해 오빠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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