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장수

by 천이형님 posted Feb 0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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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시장 이불 장수가 나를 붙잡는다. 이불 한 번 쳐다봤다고 즉시 이불 세 채를 펼친다. 호랑이를, 장미꽃을, 공작새를 수놓은 이불을 펼친다. 이불 한 번 만졌다고 날아다니는 새 백마리를 펼쳐놓는다. 아홉 채 열 채를 펼쳐놓는다.  야옹이를, 러시아 호랑이를, 아라베스크를 뿌리치고 가야 하는데 못 가고 만다. 

 

사십 년 이불 장사 베테랑의 수완에 말려들어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 많은데 맘에 드는 게 없다니, 가격이 맘에 안 드나요? 이불 장수가 계산기를 두드려 눈앞에 들이민다. 다른 가게도 좀 돌아본 후에요. 그가 눈을 치켜뜨며, 이렇게 많이 펼쳐보고 그냥 가면 어떡해? 미안해요, 간신히 뿌리치고 달아나는데 재빨리 뒤쫓아와 귓가에 처음 만진 이불을 반값에 주겠단다. 그는 나를 나보다 더 잘 안다. 나는 돌아가 아까 그 이불을 다시 만지게 된다. 안 살 줄 알고 제시한 가격인데 다시 왔으니 손해 보고 파는 거예요. 대신 베개 값을 더 내야 돼요. 가격을 올린다. 어느새 둘둘 말아 포자을 한다. 카드를 내미니 현금 내면 십 프로 할인해준다고 한다. 호랑이도 장미꽃도 공작새도 다 가짜라는 거 안다. 이불 덮고 항우울제를 삼키고 눕게 될 것이다. 벌떡 일어나 소비자 고발센터에 전화라도 해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꼼짝 못한다. 시장에서의 현금 결제는 반품이 안 된다고 했다. 

 

 

최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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