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동

by 천이형님 posted Dec 1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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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평동이라는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할마시들은 넝마를 하고 엄마들은 파출부를 나가는게 당연했다.
공부하기 싫으면 너도 공장다녀.
형들은 중학교를 다니다말고 토끼털 공장에 취직하고는 했다.
밤이면 싸우는 괴성이 들렸다.
사람이 싸우는게 아니라 짐승의 비명같은거였다.
부엌칼을 들고 쫓아오는 남편을 피해 도망가는 속옷차림의 아줌마들도 흔했다.

태평동.
가난에 뼈가 닳아지는 이동네엔 너무 한가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텔레비전을 보다가 32년 살던 내 동네를 비춰주는 다큐가 나왔다.
반가운 명랑이발관.
주인 아저씨는 이발관에서 항상 화투판을 열어줬고 판마다 100원씩 고리를 뗐다.
그리고 기술이 부족해 내 친구 인용이의 귀를 (살짝)자르고
내가 입대에 할 때도 이곳에서 머리를 잘랐다.

동네사람들은 대부분 서울로 상경하기 전에 잠시
여기서 기틀을 잡으려 했지만 결국 주저앉았다.
운이 좋아서인지 성남을 떠난지 10년쯤 됐다.
그래도 서울대를 네다섯 보내던 모교는 양아치 학교가 됐다.
정치인들은 선거때마다 재개발을 하겠다고 고도제한을 풀어주겠다고
사십년째 같은 거짓말을 한다.
동네는 더 가난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