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

by 김효주 posted Sep 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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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첫 경험이 있던 날이다.


 


  난생 처음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 봤다.


  메일로 날라오는 상품광고를 보면서 사고싶은것도 많았지만,


  인터넷으로 쇼핑을 한다는 것의 재미를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거기에 물건은 다리품 팔아가며 눈으로 보면서 사야한다는


  내 고지식함도 한 몫 했을것이다.


 


  인터넷은 나에게 있어 여전히 가상 공간(virtual space)이다.


  물론 커뮤니티에는 사람의 냄새가 배어있고,


  얼굴 쳐다보며 떠들어대는 것보다 덜할 수는 있지만, 글이라는 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서버가 폭격당하면 이 공간에서의 오손도손한 나눔도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망상을 지우기가 힘들고


  그런 생각은, 프리챌에 로그인 할 때 가끔씩 프론트 페이지 대신 나오는, '서비스 점검 안내' 라는 공지를 볼 때에 더욱 강해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제공해주는 곳을 대책없이 믿어야 한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일게다.(뭐 공짜로 쓰는거 말이 많다고 하면 할말은 없다.)


 


  디지털 공간(digital space)인 인터넷이


  나의 생활 공간인 물리적 공간(physical space)으로 들어올때가 있다.


  커뮤니티에서 읽은 사람들의 글이, 일상 생활 가운데서 생각날 때 그렇고,


  인터넷에서 접하는 게임을 할 때 그렇고,


  전화기도 없는 내가 인터넷에서 여러 소식을 접할 수 있을 때 그렇다.


  이정도는 내가 인터넷에 참 감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잠시 아바타 이야기,


  새로 개편된 프리챌 아바타는 디지털이 물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단적인 현상이다.


  왜 인터넷으로는 뭔 짓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채팅으로 만나서 얼굴도 안보고 결혼까지 약속했던 것도 그런 이유때문이고.


  아바타는, 인터넷에서 마우스를 가지고 손가락 장난을 한 것이


  '돈'으로 청구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손장난을 돈으로 연결시킨 프리챌의 상업전략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화면에 막대기 모냥 서있는 사람모양한테 옷을 입히는 것이 하나도 재미없는 나는


  거기에 돈을 지불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래저래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것은 모험이었다.


  돈을 넣고 물건이 올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믿음, 그 믿음이 없었다.


  뉴스에 나오는, 인터넷 유령회사들, 찾아가보면 문은 잠겨있는 그런 회사들에


  내 돈을 떼어먹히는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할 순 없었다.


  물론 이번엔, 내돈 23,900원 떼어먹으려고 문닫지는 않을 꺼라는 생각으로 물건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빨간 워크맨에서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음악이 즐겁다.


  씨디롬에 mp3를 오가던 요즘이었는데, 서랍에 묵혀있던 테잎들을 꺼내봐야겠다.


  어떻게 보면,


  인터넷은 서로의 믿음이 필요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왜 메일이나 쪽지로 약속을 취소하기는 어렵지 않아도, 약속을 만들기는 좀처럼 쉽지 않은 경험들, 한번씩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유천 커뮤니티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