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점수가 나온 날. 다들 못처럼 그 자리에 박혀있었다. 어떤 말랑한 위로도 부질 없다는 걸 여드름 투성이의 소년들은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은 없고 더 깊히 박히거나 뽑혀지거나, 우린 다른 길을 갈거라는 걸. 그건 아주 오래된 기억인데도 먼지 하나 묻지 않고 선명하다.
얼마전에 인사 발표가 있었다. 이번엔 분명 내 차례가 아니었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들썩이며 자리가 변동되는 것을 보니, 이삿날 아침처럼 마음이 어수선하다. MBC에 들어오고 나서는 그냥 항구에 정박된 배 같았는데, 이 배에서 저 배로 나를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생기니 나도 출렁댈 수밖에.
부장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부장이 안되고 싶지도 않은 이상한 마음. 무엇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선명하지 않다는 게 멀미를 불러 일으켰다. 계속 나를 증명해야하는 건 고단한 일이다. 좋은 음악을 틀고 마음을 보듬는 이야기를 읽고 싶어 찾아온 건데, 나조차도 그런 일들은 이제 애들 놀음처럼 취급하고 있다.
더 단단히 묶어야 할까, 복잡하더라도 꼬인 줄을 풀고 나가야할까. 밥을 먹으며 틀어 놓은 뉴스가 시끄럽다. 아마 다음주엔 더 궂은 날이 올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