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일이 없다

by 천이형님 posted Mar 1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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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실에 80명이나 들어 서 있던 우리네 고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물건. 규왕이 선영이 부부의 뚜쟁이 역할을 한 대가로 받은 콩나물 시루다. 팬트리에서 꺼내보니 먼지가 수북하긴 했지만, 닦으면 제법 사용할만 해보였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몇번 자리를 옮기다가 잃어버린 부품. 물 연결 대롱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물건값 2000원에 배송료 3000원이 아이러니 했지만, 구할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란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시험 작동할 때만 해도 퐁퐁퐁 힘차게 솟아오르던 물줄기가 막상 연결을 해 놓으니, 뽀글뽀글 공기 방울만 올라오고 반응이 없다. 수중 모터를 조립했다 분해했다, 물을 부었다 뺐다를 몇번이나 했는데 중간에 짜르르르 전기만 한번 오고, 소득이 없었다.

 

 

제품 자체가 좀 엉성하게 만들어진 부분이 있는데, 요렇게 하면 되고 저렇게 하면 안되고를 반복하기만 했다. 탕탕탕 몇번 두드리면 다시 화면이 나오는 옛날 TV 수리법까지 시도했지만 그건 너무 원시적인 해법이었나 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여기저기 펼쳐진 부품과 흥건히 젖은 마루를 보니 한심한 생각에 치우기도 싫었다. 괜히 쓸데 없는 짓을 해가지고… 나이 마흔 여덟에 그냥 보잘것 없는 사내가 된 기분이 축축했다. 


수고했다고 이런 것도 괜찮은 시도였다고 툭툭 쳐줄 어른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돌아가신 아빠가 좀 보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