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전자공학과 시절. 게임 아이템을 도난한 것을 범죄로 여길 것인가에 대한 법적 논의가 있었다. 지금은 게임 아이템에 천문학 적인 돈이 지불되는 시대니, 당연한 판결이 나겠지만. 당시의 요점은 '게임 아이템을 재화로 인정할 수 있느냐'였다.
현재는 게임 하나가 기가바이트 단위로 만들어 지고, 프로그램을 코딩할 때도 모듈에 모듈을 더하는 수준으로 제작되어 그 원형을 알수 없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에 담기는 용량이었기 때문에, 조금 자세히만 살펴보면 연습장 낙서를 뜯어보듯 그 내용을 헤어릴수 있는 수준이었다.
소프트웨어는 기본적으로 정보다. 0101110111의 배치다. 게임 아이템이라는 것이 연습장에 나열한 이진법의 숫자일 뿐이고. 아이템이 다른 사람에게 이동되었다 하는 것은, 그 숫자가 조금 고쳐진 것 뿐인데. 이것을 어찌 도난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다시 숫자를 바꾸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그런 게임아이템에 집착하고 돈을 지불하는 것 자체가 한심한 죄라는 '게임 원죄설'이 오히려 힘을 받기도 했다.
인생에 대한 집착은 무엇이 다른가. 인간은, 돈은, 명품백은, 건물은 무엇이 다른가. 이 모든 재화는 01011100의 아라비아 숫자 대신 원자라는 숫자를 이용한 이진법 아니던가. 흙으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삶과 죽음도 원자가 조합했다가 흙으로 재배치 되는 일일 뿐이다.
사는 것은 널따란 바둑판에 시간이라는 돌을 두는 일이다. 포석과 행마, 싸움과 집짓기. 절망과 희망이라는 원자. 흑돌과 백돌을 내려놓는 일이다. 한판 두고나면 그냥 다 엎질러지는 짧은 여정일 뿐이다.